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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영전에(이 글은 흰나리 아버지께서 쓰신 글입니다) 2004/07/03
흰나리 님의 글입니다.


   아버지 영전에

   아버지께옵서 그렇게 좋아하시던 손주놈 선종이가 벌써 장성하여
   좋은 배필을 만나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살아생전에도 자손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라면 목숨 아니 어떤 희생도
   할 수 있으시다 하시던 아버지 이였었기에 저렇게 의젓하게 정형외과의사로서
   큰 수술도 잘해내는 손주놈을 생전에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대견해 하셨겠습니까?

   저승에서라도 기뻐해 주시옵고 심의가 되어 사회의 큰 일꾼이 되도록
   보살펴 주시고 어머니께서도 편안하게 천수를 누리도록 돌보아 주시옵소서!

   小宗家 이지만 장손이라 제사가 빈번한 우리집,
   자가용이 귀하던 그 시절 제삿날 다음날 새벽열차로 곧바로 돌아올 예정으로
   부산에서 밤열차 타고 자정께 북천역에 도착하여 어두운 길 서둘러 집에
   도착하면 제사모실 준비 다 해놓으시고 “왔냐” 하시며 대견해하시든 모습이
   눈에 선한데......선친께서 작고하신지도 14년이 훌쩍 지나 15년에 접어든다.

   대학시절 학생회장에 입후보 하였을 때 그 당시 5천원인가 하는 꽤 큰돈을
   가져다주시며 “선거에는 지면 변명이 없는 거야!” 하시던 그 기억이 생생한데
   아마 당신께서 교육감선거에 몇 번 낙선하신 아픈 경험 때문 이였겠지요.

   어제(26일)가 “부처님오신날”이라 예불을 드리면서 아버지 기억도 많이 떠올렸죠.
   술을 좋아하시면서 태평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도록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저희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여유로웠던 그 마음하며
   고교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큰 인물은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큰 바위 얼굴”이 뇌리에 자구 떠오르는 것도 무슨 까닭이 있어서 인지요.

   14여년전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전화 받고 정신이 멍하면서도
   덕을 많이 쌓으셨을 분인데 웬 교통사고냐? 고 임종도 못 뵈옵고
   남들에게 말하기가 부끄럽기 까지 했던 원수 같았던 그 사고!

   대학원공부를 한답시고 고교교사를 때려치우고 일본유학을 결정하였을 때
   그 어렵던 집안형편에서도 격려해주시며 일본에 있는 친척들이랑 제자들에게
   연락하여 유학을 주선해 주시던 아버지!
   귀국해서 뜻만 같지 아니하여 직장이 잘 마련되지 아니 할 때에도
    여유를 가지시고 도움을 주시던 아버지!
   어렵게 부산 동의대에 자리 잡은 지 겨우 4년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해드렸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였던지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까?

   살아계신 아버지 친구 분들을 뵈옵을 때 마다 이제는 저도 자리가 잡혔으니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과 언젠가 제게 “꼭 가봐야 할 弔問
   있었는데 노자가 없어 문상을 못하였더니 항상 죄스러움에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
   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심정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산에서 크게 성공하시고 하동향우회 일에 모범을 보이시는 제자이신
   전상기 회장님께서 아버지 말씀도 많이 하시고 또한 혹시나 기회가 되면
    문집이라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아버지 편지라도 보관하고 있는 것이 없나하고
   찾아간 옛 친구이신 이종화변호사께서도 왜정시대 공출이 심하여 어렵든 시절
   지내기 편한 갈사소학교 교장사택에서 신혼은 아니지만
   젊은 새댁인 어머니 눈치 보면서 가끔씩 와서 아버지와 같이 考試 공부하여
   자기만 성공하고 아버지는 성공하지 못하신 이야기 등
   또 저 보다는 훨씬 년 배이신 아버지 제자 분들과도 제자 사랑하신
   아버지의 마음에 대한 말씀을 종종 나눌 기회가 있곤 하였습니다.
   저도 흉내를 내 보려고 합니다만 잘 안되며 마음이야 같겠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그 때와는 엄청 다르겠지요?

   교직에 종사한다고 객지생활로 잘 參祀 치 못하지만 역시 교직이 어울리는
   아버지를 교장을 그만두고 북천면장으로 고향집으로 불러드리는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시었던 장손으로서 그 길이 면장을 그만두시고 교육위원을 거쳐 교육감에
   도전하는 3번의 고난의 길이 된 셈입니다.

   고향에서 선비정신을 끝까지 지켜 오시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시면서도
   고향 발전을 위하여 북천 간이역이 될 것을 특급열차가 설 수 있도록 추진하시고
   북천중학교 설립추진위원장으로 고향출신 인사들께 북천이 옥종 보다
   초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공민중학교육도 먼저였지만 옥종은 공립중학으로
   자리 잡았으나 북천은 실패하였다면서 이번 기회에 자손들을 위하여 북천중학을
   설립하고 고등학교도(고등학교 부지로 마련한 것은 생전에 모두 정리하였음)
   추진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들이 환경이 멋진 한 학년 3학급이 넘는 중학을
   설립하였으나 지금은 전교생 하여 40여명이라니 북천중학교에 들릴 때
   웬 지 마음이 찹찹해 지던군요.

   처음에는 직전 위쪽은 제외되었지만 반만이라도 일단 하게 되면 성공적이라고
   국회의원 엄기표 제자 덕분에 북천을 통과하여 둘러서 옥종을 가도록한 농촌
    電化社業 으로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일 등
   이런 3대 북천 근대화 사업이 고향발전을 앞당기는 결과가 되었죠.

   북천 독립만세기념 비석 세우시는 일 하며 고향에 대한 애착심이 대단하셨지만
   수중에 경제력을 못 가졌으니 마음만 있고 실행은 어려웠겠지요.

   그래도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바르게 사는 길도 가르쳐 주셨다고
   간혹 저가 인사 받을 때 가끔은 그런 아버님이 자랑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벌써 아버지 가신지 15년째로 접어듭니다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살아계신
   어머니께 하여야 하겠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아버님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들 아들 딸 모두에게 어머니 보다는 아버지께서 훨씬 인기였잖아요!?
   그 잔상이 빨리 떠나지 않나 봅니다.
   아버지 자식들인 저희 형제 남매 모두들 사회에서 제 역할들을 하고 있는 것도
   모두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라 생각되옵니다.

   집사람이 아프고 난 뒤 수양 겸 다닌 절 공부가 아직은 뭔가 뭔지 몰라도
   조금씩은 알 것 같기도 하여 전번에는 아버지 큰 며느리 주선으로
  薦度齋 를 彌林寺 에서 정성껏 올리고 나니 마음도 편안한 것 같습니다.

   아버님! 涅槃 에 드셔서 저희들 특히 아버지를 좋아하였던 큰며느리
   끝까지 병마에서 지켜주시고 저의 형제자매들 모두들 끝까지 지켜봐 주시옵고
   아버지 손자놈 집안을 일으키는 사회 큰 일꾼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2004년 5월 하순에
불효자 주수 아버지 영전에 올립니다.
* 흰나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12-12 14:57)
sun.gif
흰나리 영상을 만드는 내내 눈물이 빰을 따고 내렸습니다.
나리가 고등학교때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유머도 많으시고
정말 멋진 분이셨습니다.
그 시절 나리의 할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습니다.

2004/07/03 - Delete
최 주 수 요즈음 집사람은 건강에 유의하도록한다고 컴퓨터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였드니 아시는 분들께서 E-mail이 없어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게 안부를 전해옵니다. 여름이라 좀 피곤해서 미리 주의하는 중이니 걱정안하셔도 됩니다.
이글은 고향향우회지에 실었던 글이며 제일 먼저 나오는 사진은 아버지 초임지의 하동초등학교의 앨범사진(1935년)의 모습입니다.훈도(교사) 8년후 20대 나이로 갈사소학교교장으로 부임하여 창씨개명 등 강요에도 집안의 전통을 지켜 최씨성을 유지하였습니다.
이글을 올린 이유는 집사람이 글을 올리지 않는데 대하여 걱정해 주시는 분들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저의 어머님께서 노환으로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신지라 집사람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때문이라 생각되오니 당분간 글을 올리지 않더라도 크게 걱정 않하셔도 된다는 내용을 같이 전하고자 이글을 올린 것입니다.염려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무덥고 짜증나는 장마철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004/07/03 - Delete
할아버님 말씀은 장인어른께도 장모님께도 그리고 재민엄마에게서도 몇차례 들어서 그 말씀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장인어른의 글을 직접 보고 빛바랜 옛사진을 보니 느낌이 남다릅니다.
할아버님은 뵙지못했지만 그래도 할머님은 정정한 모습을 뵐수 있었고 또 지금도 병상에 계신 모습이나마 뵐수 있으니 아무래도 저는 부모복은 참 많은 놈 같습니다.
할아버님이 저 높은 하늘나라에서 아버님의 뜻을 이해하시어 여러가지 우환들이 곧 가시도록 잘 돌봐주시리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한번도 뵙지 못했지만 전혀 낯설다거나 어색하지 않은 사진속의 얼굴을 보니 아마도 장인어른께서 할아버님의 모습을 많이 가지신것 같은데, 아버님 제 생각이 맞나요?

2004/07/06 - Delete
장인어른 이서방 보시게나!
역시 이서방 자네의 솜씨는 알아주어야겠어.
이글은 선종이도 결혼하고 해서 아버지께 고유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차 향우회에서 향우지를 발간한다고 원고청탁이 와서 "아버지 영전에" 글을 급히 써보냈는데 요즘 자네 장모께서 건강에 유의한다고 internet에 글을 삼가하고 있으니 지인들의 걱정 전화가 오고해서 인사대신으로 올린 것으로 재민에미에게 부탁했드니 솜씨를 발휘하여 옛날 사진까지 챙겨 flash를 터트렸구나.
내가 나이 들어 갈수록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소리를 간혹 듣기도 하지만 생김이야 그럴지 모르지만 인품이나 서예, 한문 등 사상과 교육철학이야 감히 흉내낼 수 있겠나!
어려울 때 일수록 믿음이 우리를 구원해 주듯이 도리를 다 할려고 노력하면 난 조상님께서 자손들을 지켜주시라 믿는 마음이 강하니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시리라 믿는다네.
오늘 저녘 처할머니 병문안을 하겠다니 내 먼저가서 기다리겠네. 문안 후에 자네랑 둘이서 한잔 하면서 전번에 못다한
이야길 나누자구나. 자네 장모 얘기처럼 자네가 우리 가족이 된 것을 조상님께 감사하고 있다네!

2004/07/06 - Delete
이원희 아버님...오늘 대나무통술에 맛있는 갈비와 삼겹살..정말 잘 먹었습니다..
회사선배 상가에 문상도 가고, 할머니도 한번 뵈러 찾아간길..할머니 상태도 많이 호전되신걸 눈으로 확인했고 그래서인지 아버님 기분도 많이 좋아지셔서 더더욱 좋았습니다.
제법 많이 술을 마신듯한데 취했다는 기분은 하나도 들지 않고 이렇게 멀쩡하게 컴 앞에 앉아있는걸 보면 역시나 기분좋게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라 보약인가 봅니다..
아버님..오늘 밤에는 아버님이 편하게 주무실수 있을것 같아 참 기분 좋습니다.
오랜만에 숙면도 취하시고 지금처럼 언제나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다음부터 아버님하고 둘만 마시는 약주는 이제 제가 대접해 드리는걸로 오늘 정했으니 오늘처럼 지갑 열지 마십시오..
사위놈 그래도 아버님께 약주 한잔 대접해드릴만큼은 월급 받아온답니다..
그런 내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2004/07/06 - Delete
흰나리 트랜스로 이런 표현을 했었는데...수동언니가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무브해가지고 타임 적당히 주고 스케일에서 150이나 200 주면 되지 반대로 작게 할려면 너가 아는 트랜스도 좋지만 무브효과를 바로 쓰면 되지 80 이나 50으로 스케일을 주면 된단다....붓칠한 효과는 포샙에서 브로시를 이용해 투명이미지로 만들어서 세이프로 불러 온 거다 )
호호호 이렇게 달아 둬야지 공부한 흔적이 보이겠지....!

2004/07/15 - Delete
주정희 조상은덕을 기리는 효심에 그저 눈물이 흐릅니다.

2004/08/09 - Delete
김정순 좋은 글이 있는지 몰랐군요
잘 보고갑니다

2004/08/19 - Delete
최주수 주정희 교장선생님께
먼저 교장 승진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댓글 주심을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저의 집사람(지다)으로 부터 종종 이야길 듣고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만......
능력 있으시고 남들에게 베푸심이 많으시니깐 승진은 당연한 인괴응보이겠지만 오히려 늦고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흔들리는 교육현실에서 햇살 같은 교육철학 펼치시길 빕니다.

동시에 정순씨에게도 따로 답드리지 못하고 함께 안부전합니다.
정순씨 내외분 화이팅!

2004/08/25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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