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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자리 - 흰나리 아버지의 글....- 2003/12/11
흰나리 님의 글입니다.


이글은 저희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쓰신 글입니다.
어느 책자에 인쇄되어 나온 것을 제가 한 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내의 자리
봄이라 그런지 새 생명이 움트는 활기가 완연하다.  
정말 세월은 빠르기도 하고 또한 사람은 환경에 재빨리 적응해 가는가 보다.
그렇게 답답한 심정도 제법 평온을 되찾았으니깐.

반년  전 그러니깐 작년 8월의 악몽 같은 현실은 다시는 없었으면......
그 당시 집사람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좀 여유가 있으면서  
평소 위통도 자주 있고 하여  이번 기회에 위염치료를 좀 해야 할 것 같다며
처형의 재촉에 같이 종합검진을 하고 뭔가 좀 이상하다고 하여
동의의료원에서 정밀신체검사를 했었는데......
그 결과가 그렇게 사람을 혼쭐나게 할 줄이야.

검사결과 보러 가는 날 마침 아들 선종이(서울대병원 전공의)가
휴가 차 집에 와있었음으로 별일 없길 바라면서 엄마와 같이
동의의료원에 갔다가 나에게 걸려온  핸드폰에 울먹이는 아들의 목소리
「 엄마가 위암이라고」. 다행히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서울대병원
담당교수님과 통화가 되어 하루라도 빨리 모시고 오라는 통에
수술예약을 했다는 울먹임은 운전중이든 나의 정신을 몽땅 빼앗아 버렸다.

준비하여 서울에 간 날 각종 검사 등 진료를 마치고
위전절제 수술을 위하여 입원하기 전 먹고싶은 것 많이 먹으라는 말에
딸애랑 인사동 골목집에서 원래 식사량이 작은 당신이 실컷 먹는 다고
용 써는 일 하며, 입원 전 뮤지컬(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이라도 하나 보겠다고
애써 태연한 척 하는 당신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더더욱 처연한 심사를 느끼게 되었는데......

지나간 반년 동안 집사람은 굳은 의지로 정말 힘겨운 투병생활을 잘도 하여 왔다.
수술실에 들어가고 난 후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은 너무 초조하고
또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감으로 사위, 딸, 친지 모두 함께
좀 먼 식당에 식사하러 갔지만 당신께 고집부리고 술 마시고  
애먹이며 잘 해주지 못한 지나간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이번에 낫게 해주면 정말로 아내에게 기싸움도 하지 않고 아내의 뜻대로
할 터이니 제발 낫게 해달라고」 애먼 조상님을 탓하며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수술 후 「위암이 진행되어 림프절 반수 정도는 침범이 되었으니 통상적으로는
20% 정도 치료가 된다면서 확률이 문제가 아니라며 어떻게든 20% 내에 들어가도록
치료와 투병에 함께 힘쓰도록 하자며 특별히 신경을 써서 수술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음을 주시는 위암수술의 세계적 권위자라는 외과의 이모교수님의
위안에 자위를 하면서 그후 항암치료는 혈액종양내과의 방모 교수님을 특진으로
대개는 6회 정도의 치료를 하면 판단이 된다면서 시작된 그 힘들고 괴로운 치료가
때로는 회복상태가 뒤따르지 못하여 몇 번 서울까지 갔다가 예정된 치료를 못 받고
다음 번으로 미루고 되돌아오기도 하면서 의지와 신념이 기대 이상이라고
잘해오든 투병도 마지막 항암치료라고 기대하였던 여섯번의 치료가 끝난 후
별 이상 없이 치료가 된다 하면서도 자세한 설명 없이 한두 번 더 치료하자는
방교수(서울대 병원 특진교수)의 말에 실망하였는지
그 다음 퇴원 후 이튿날부터 상태가 안 좋더니 위급한 상태로 되었다.
설을 앞두고 놀란 가슴으로 동의의료원, 동네병원을 다니면서
부작용 치료를 하였지만 그때의 막막한 심정은 못되면 괜히 조상 탓이라고
조상님께 빌고 또 빌었다.  

당신과 난 각자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한지라
남들에게는 그렇게 잘 이해로 감싸주면서도 상대에게는 좀 지나치게 엄격하였기에
- 2000년  내가 일본에 객원교수로  파견되어 있을 때 당신이 어머님 간병하다가
잠깐 일본에 방문해서 같이 있을 때 정말 서로 잘 통하던 그 때와 비교해 보면 말이요.

당신의 위암 수술 후 때로는 차라리 안락사를 택하는 편이 낫겠다는
그 어려운 항암치료(화학요법)를 계속하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과 서로를
뒤돌아보면서 반성의 기회도 많이 가졌죠.

당신의 그 지극한 자식에 대한 사랑도 역시 남편의 큰사랑에는 비할 바가 못되며
나 또한 뭐니뭐니해도 제일 소중한 사람은 아내 당신이라는 것을 말이요.

부부가 함께 빗길을 걸을 때 각자 우산을 쓰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 못되며,
또한 남편의 우산 안에 들어와서도 못미더워 다른 우산을 또 써서도 안되고,
가능한 큼직한 우산을 남편이 받쳐들고 아내는 함께 맞잡아 가야만
비도 잘 피하게 되고 문제도 적다는 것을.
내주장이 강하여 밉게 보이는 것도 소신이 뚜렷하다고 곱게 볼 수 있으며
조그마한 봉사도  당연지사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특히 남자는 일반적으로 자기를 알아주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무한의 봉사를
하고싶고 가족을 지키려는 근성을 가지는  속물이라는 사실을......

이젠 나의 아내도 남편과 주위 분들의 소중함과 능력을 믿고
가없이 존경하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에겐 좋은 일만 있으리라고.      
이처럼 마음속에 다짐한 것처럼 내 우산 안에 들어오면 어떻게든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굳센 각오를 다짐하면서......  
「“ 지금은 갈 때가 아니며 해야 할 일도 많이 남았고 이젠 어머니로서만이
아니고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꼭 필요하오니 제발 집사람을 낫게 해달라고”」
조상님께 틈만 있으면 빌고 또 빌었다
-아버지 제삿날 당신은 「설」전에  위급을 당한 후
서울대병원에 항암부작용 치료차 입원해 있을 때 제주를 올리면서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이번에 낫게 해주시면 아내뿐만 아니라
조상 섬기길 더 잘 하겠노라고 다짐했는지!

30 여년의 교직생활에서 교사로서 만은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값지고 뜻 있는 멋진 생활을 해온 화려함과 격식을 중히 여기는
당신이 병으로 그만두는 심정을 왜 모를까만 명예퇴직을 위하여
학생들에게 인사하러 오라던 날 아무래도 행보에 자신이 없어 포기하든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당신이 치료되는 날 염려해 주시던 사람들과
함께 조촐한 소향이라도 베풀고 싶으오.

아내의 이번 투병과 관련하여 아내가 「“치료가 잘되어 가는 것이
남편(동의의료원)과 아들(서울대병원) 또 때로는 감동을 자주 주는
행동을 하는 사위 들의 덕분이라며”」 고마워 할 때는 이보다 더 힘들더라도
아내를 위하여서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토록 할 수 있는 용기가 솟아오름을
느끼며 나 자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음으로 모든 부인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소.

아내와 다투거나 미울 때면 「 저 여자 좀 안 아프나!  아파서 기가 좀 죽어
살살기면 잘해주고 보호해 주어야지」 하는 마음을 보통 남자들은 가질 수도
있음으로 여자가 좀 똑똑하고 능력이 있더라도 남편의 소중함과 능력을 믿고
존경하면서 좋은 일들은 당신 덕분이라고 남편 탓으로 돌려주면
아무리 힘든 일도 기분 좋게 할 수 있으며 남편은 아내 보호를 위하여
감히 목숨을 다 바치려고 할 것이므로 그런 집은 평화와 영광이 가득 차는
행복한 집으로 된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실감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확신합니다.

정상적인 여자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좀 정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남편이  아내에게 잘해주면 결국은 아내도 올바르게 잘해주기 마련인데
- 상식이 안 통하는 정도가  지나친 여자도 시일이 오래 걸리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옛날에는 아내란 요강과 같아서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하였다지만 어떤 사정이더라도 귀가했을 때 아내가 집에 없으니
뭔지 허전하고 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고 모든 것이 제대로 안된 것만 같아서
아내의 자리란 꼭 표를 내기보다는 정말 없어 보니 그 중요성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우며
아프더라도 없는 것보다 낫고,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곁에서 걱정해주고 염려해주며 찾아와서 위로해주는 주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빨리 나아서 그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치료에도 도움이 되며
또한 우리들의 생활이 긍정적이며 나쁜 삶이 아니였다고 자위하면서
이젠 보답이라도 하는 의미에서 더욱더 믿고 사랑하면서 서로에게 감사하고
위로해 주면서 특히 요즈음 당신이 나에게 믿고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보여주니
뭐든지 해주고 싶고 한때 「“ 저여자 좀 아파서 기가 팍 죽어 살려달라 엎드려 애원하면
끝까지 힘닿는 대로 치료해 주면서  절대자가 용서해 주듯이 잘해 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 얼마나 지나치며 잘못된 것 이였음을 알게 되었다오.

다음주 예약한대로 종합정밀검사를 해서 그 결과에 따라서 한두 번
마무리 치료를 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간 주치의도 치료가 잘되고 있으며
다소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별다른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하며,
이젠 식사도 제대로 하고 걸음도 곧잘 걷고 목소리도 투명해지며
부작용도 점점 약해져 가는걸 보니 이젠 안심도 되니
염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할 다름이며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아내의 자리가 그렇게 크고 위대함을 알았으니
오늘의 내가 존재함을 당신의 덕분으로 알고 너무 지나치도록
당신을 힘들게 한 투병생활도 우리 두 사람의 영원한 한마음을 위한
조상의 계시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내 당신께 최선을 다하여
남편의 도리를 다하도록 다짐하면서 우리 끝까지 사랑하면서
여생을 욕심 없이 봉사하면서 살았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 드리며
다시 한번 당신의 그 힘든 투병과 회복에 감사드립니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2003년  3월  하순에  연구실에서
               새로 태어난 것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        

김귀연 저는 유행가 가사중에 이말을 한번씩 되새기는 습관이 있는데 어찌그리 맞는 말인지 가수 송골매가 부른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누구나 고통이 따르지 않고는 그 고통의 깊이를 알지 못하듯이 ..........

2003/12/11 - Delete
흰나리 이글의 배경 음악은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노래가 어때요?

2003/12/11 - Delete
흰나리 이글은 월간모던포엠 2004.5월호에 실린글입니다.

2004/05/06 - Delete
김이순 보내주신 편지를 보고 아련한 마음으로 엄마의 향기에서 흰나리 아버님의 아내에 대한 글을 보고 점심시간을 혼자서 막 울었습니다.
오늘이 우리의 26주년 결혼기념일입니다. 밤에 남편과 조촐한 시간을 가지기로 했으나 멋진 제안을 하지 않은 남편의 뒷모습이 오늘 아침 약간 미웠는데......
우리는 중요하지도 않는 일들에 많은 기싸움을 하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흰나리 아버님이 올리신 아내의 큰자리와 애틋한 사랑에 대한 글이 제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할렵니다.

우리의 멋진 만남 감사드리며...
주변에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 행복하시고 건강하소서...

2004/11/07 - Delete
흰나리 좋은일 하시는 간호학과 교수님 맞죠?
어머니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기꺼히 도울일 있음 도우겠습니다.

2004/11/07 - Delete
강향자 흰나리 공간에 들어오면 소중한 마음들이 가슴가슴 남아
찡한 감동을 느낌니다.

2006/04/24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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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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