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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지 웅동의 추억 (흰나리 아버지의 글) 2004/11/12
흰나리 님의 글입니다.

    초임지熊東의 추억! 지금으로부터 35년 전(1969년 5월) 첫 번째 사회생활이랍시고 대학을 졸업하며 곧바로 근무한 곳이 당시 성창근 선생님이 교장으로 계시던 웅동중학였습니다. 60년대 말 그 당시에는 공업입국을 위한 박차를 가하던 시대인지라 실업계 교사(특히 공업)는 모시기가 어려운 시대였기에 대학졸업 후 거제고와 웅동중 두 곳의 초빙을 받았는데 그중에서 섬이 아니며 임란 중 안골포대첩이라는 역사가 서린 바닷가라는 이유와 당시 그곳에 근무하면서 안내해준 황영두 선배에게 이끌러 택하였던 첫 발령지가 바로 웅동중이었습니다. 당시 웅동중은 아직 완성학교가 아닌 증개축중인 학교로 번듯한 교장실과 교무실도 마련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누구나에게 그러하듯이 2년이라는 기간 동안 근무한 초임지이므로 나 자신에게는 추억과 회한이 많은 곳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초임시절 그 당시에는 정규자격을 가진 교사들이 부족하여 교사 양성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획득하기도 하던 때였고 교사 한명이 보통 두서너 과목씩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 난 실업(농업)자격증으로 농업과 영어수업을 하였고 그것을 기하로 영어교사 자격검정시험에 2번째 도전하여 영어교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다음해 공립학교영어교사로 발령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답니다. 특히 성교장님께서 탁월한 테크닉과 열정으로 솔선수범하여 행하시던 직원체육배구는 한번 씩 관내 학교를 순회하면서 친선경기를 갖기도 했는데 이런 친선경기시에는 여교사가 많은 초등학교의 방문을 기다리며 그 당시 유행하는 이미자의 "총각선생님" 인체 뽐내기도 했었습니다. 첫 사회생활이라 학교선배이신 황영두 선생님과 그곳 출신인 박흥섭 선생님의 친절한 지도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거제출신인 지한오 선생님의 전문가급 낚시 솜씨로 인해 초보자인 본인도 "장꼬재" "용원" "돗섬" 등에서 낚시추억을 남기기도 하였고, 학부형의 작은 돗단배로 학생들과 같이한 낚시, 또한 물 때 맞추어 햇불 밝혀 창으로 잡는 나병만 선생님과 신현태 주사님의 작살법 등 지금도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보다 일년 늦게 부임한 신혼의 김종상(교장으로 정년)선생님께서는 항상 활력있는 유우머와 직원 체육 시에는 재미있는 포즈로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어색함을 안은채 하던 첫 가정방문에서는 대장골 어느 학부형 댁에서 날계란을 대접받았는데 남는 몇몇 개를 억지로 싸주신다 하여 사양하지 못하고 그 정에 이끌여 양복 호주머니에 넣고 오던 중에 계란이 깨어져서 흘러내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중간에서 쩔쩔 매던 일, 신학기의 가정방문시 용원에서 소주대접을 과하게 받고 멋적었던 실수하며... 첫 시승의 오토바이 사고로 "오토바이 타려면 최선생한테 물어보고" 라는 유행어와 병원에 문병차 오면서 죽을 쑤어 온 하숙집 따님과 그 친구 분! 그 친구분과의 첫사랑의 느낌 등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때묻지 않은 첫 사회생활에다가 지금보다는 교직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훨씬 강하였고 시골 인심 자체도 후한 시대라서인지 그런대로 많은 추억도 있었고, 애꿎은 여학생들이 장난기로 선생님 이라는 호칭 대신에 "오빠" 하고 부르며 숨기도 하여 애숭이 총각선생으로서 처신에 어려움도 있었지만(본인의 하숙집에 여학생은 단체로도 일체 방문 불허 등등) 학생에 대한 열정이 지나쳐 지금 생각하면 과한 욕심에 체벌도 자주 가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역학교를 위하여 진해시로 가지 않고 탁월한 성적으로 수석입학을 한 당시 내가 담임을 한 적이 있는 이강우군, 명석한 그의 누나 이강은양, 같이 근무하던 중에 사망하신 박 선생님의 아들로 날 형님처럼 생각해도 되냐고 묻던 박치원군, 시골학생 같지 않고 항상 깔끔했던 최영희양, 김선혜양, 웅변을 잘하든 이성희군, 조금 심한 체벌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이00군(18회), 소풍만 가면 독무대를 형성하고 원숭이 흉내를 잘 내던 학생, 영어노래 특히 edelweiss를 잘 부르든 학생 등 모두들 다 이젠 중년이 되어 멋진 가정을 가진 중견으로서 대활약들을 하고 있겠지요? 웅동중을 떠나오기 전날 박치원군을 위시한 몇몇 학생과 헤어지는 아쉬움에 한잔씩을 한 후로 모두들 연락두절이 되었습니다. 웅동중학을 떠날 때는 나도 대학생시절 학생회장으로서의 선거경험도 있어 아버지 제자인 장성출신의 국회의원 입후보자의(71년 총선 당선)요청으로 선거운동에 깊이 관여할 예정 이었는데 며칠 지내면서 이것은 내 길이 아니다 싶어 懷疑를 느끼는 중 경남교위의 영어교사 발령이 나서 다시 서게 된 교단, 그 줄서기가 조금만 달랐으면 그 망할 정치판에 잘못 끼워들 뻔한 인생여정이 다행히도 이렇게 영원히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골학교에 있으면서 어렵게 한 석사학위가 별 효용가치를 내지 못하고 있던 중 이왕 시작한 공부니 박사학위를 어떻게든 취득해야겠다고 욕심내고 있던 차에 경상대학교에 처음 개설된 박사학위과정(원예학 전공)에 입학하였으나 앞으로의 진로문제와 깊은 연구를 위하여서는 아무래도 유학하여 연구에만 전념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일이라며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겠다는 아내의 권고로 고교교사를 그만두고 어려움 속에서도 아내(중학교 교사)의 희생과 재일교포로 있는 친척과 아버지 제자의 도움으로 자식 남매와 부모님 집사람을 남겨두고 日本 나고야로 늦은 유학(80-83)을 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여러 어려움 속에 부산 동의대 자연과학대학 생물학과에 자리잡아 식물학을 강의하면서 학내의 여러 보직을 거쳐 전학년도까지 자연과학대학장도 역임하면서 60 여편의 논문연구와 교수활동에 임하고 있지만 이제 거의 나이가 60에 가까워지니 웅동시절 처럼 활기와 의욕이 넘쳐나질 못함으로 연구에 대한 도전도 점점 약해져 가기만 함을 느끼게 됩니다. 일전에 웅동을 지나는 길에 옛 생각이 나서 마천리 개천가가 아닌 현 위치의 웅동중학을 물어물어 찾아 갔었는데, 예전과는 다르게 산기슭에 새로 잡은채 노대통령께서도 방문한 흔적이 있는 아담한 학교가 마침 휴일이라고 잠긴 채로 세콤경비시스템만 가동하고 있었습니다. 뒷날 웅동중학에 연락해 보니 김종상 교장님은 정년퇴임을 하셨다 하고 진해에 거주하신다며 연락처를 알려주었으나 연락이 되지 아니 하였는데 웅동중학교의 훌륭한 소식지인 "계광소식"을 2차례 받고 보니 추억속에 묻어두었던 그때 그 시절 학생들이 생각나서 혹시나 연락이 될까하는 기대감으로 글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개학이 되어 부리나케 졸필이오나 웅동의 추억을 회상하며, 앞으로 웅동중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이렇게 게재소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올여름처럼 무척이나 뜨거웠던 더위 뒤에 찾아오는 가을에 더욱 청량함을 느끼듯이 오랜만에 생각나는 사람들과 혹 연락이라도 되면 더욱 좋은 소식들을 접할 수 있겠지요? 2004년 9월1일 최주수 PS. 주소: 부산시 진구 가야동 엄광로 995 동의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분자생물학과 E-mail : choijs@deu.ac.kr Tel: 051-890-1527 HP: 011-877-2755


★아래 동영상을 보실때는 위의 음악을 정지■시킨후 아래 영상에 PLAY를 누르면 되겠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웅동중 방문 ★
. * 흰나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12-12 14:57)
최주수 선생 계광소식지에 "초임지 웅동의 추억"이 게재된 후 정말 오랜만에 궁금하던 제자들 소식도 들었고 또한 10월 22일 웅동중학교 대통령방문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여 시설면이나 학습면에서 규모는 작지만 전국에서 으뜸갈 웅동중학교 발전 모습을 보며 학교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오신 류춘우 교장님을 비롯한 휼륭하신 여러 선생님, 또한 개관식을 축하하기위하여 참석해준 친구인 고영진 경남교육감, 김종상 전교장님과 이젠 원로해진 옛날 지방 유지들을 학교 현장에서 만나보니 정말 감개가 무량하였는데 같이 참석해준 저의 집사람도 느낌이 대단하였던 모양이였습니다.
중학교 미술교사인 큰딸이 홈페이지 동영상제작으로 여러번 수상한 솜씨인지라 부탁하여 소식지를 못본 제자들을 위하여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기념관 개관식 참여와 1969년 경주 수학여행 사진을 올려보았읍니다.
먼저 E-mail을 보내준 박동진부장과 시인이된 vandy(이혜화 : 이시인 좀 미안하다! 너보다는 나에게는 담임이였음으로 언니 이은화가 더 어필하는구나. 곰곰 생각을 가담듬어 보니 백일장은 너의 자매가 싹쓸이 하던 기억이 떠오르는 구나.
"초임지 웅동의 추억"을 읽고 밤새 옛날 생각에 가슴 설레였다며 출근하자 말자 직접 전화를 해준 이혜란! 혜란씨 오빠가 이중희 맞지? 물음에 답하는 셈으로 경림 언니 친구 이야길 오트바이사고 뒤에 병문안 다음에 한 줄 넣었네 언니에게도 한번 읽어 보라고 전해주려므나. 그외에도 전화준 대장골 서혜숙, 주00. 000 등 연락한 제자들에게 감사하며 제자들 왈 계광소식지를 못본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그들 보라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놓았으니 서로들 연락해서 한번씩 읽어보고 그외도 한번씩 글 올리니 리플달고해서 연락하자구나. 정말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를 실감하면서, 항상 행운이 너희들과 함께 하길 기원하며! 2004년 11월 12일 최주수 옛 선생님이
2004년 11월 12일 최주수 옛 선생님이

2004/11/12 - Delete
박동진 선생님!

34년전, 선생님 초임시절 저희들 담임을 하셨던 웅동중학교 박동진 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 1학년때 담임을 하셨고 당시 우리반 급우들은 이강우, 조영철,
박동진,….들이였습니다.

저는 2학년을 마치고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부산에서 중학,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은 서울로 유학을 가서 경기대학교 에서 물리학을 전공해 지금은 하이닉스
반도체(구, 현대전자) 부장으로 재직중입니다.

선생임께서 웅동중학교 교지에 투고하신글을 받아보고 너무 반갑고 기뻐서 단숨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풍때 Edelweiss를 불렀고 영어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발음이 좋다고 종종
영어교과서를 읽어라고 하신게 기억 납니다.

그리고 저를 아직까지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얼굴이 하얗고 자그마한 놈이였다고 다들 기억 합니다.)
선생님!
지난 10월9일, 웅동중학교 21회 동창회를 34년만에 열었는데 저도 졸업은 안했지만
초청을 받아 갔다왔습니다.
그때..선생님이야기며, 지한호 선생님, 우복순 선생님,김종상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하고 34년전의 아스라한 추억을 더덤으며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이제 저희들도 어언 40대 후반으로 머리가 희끗희끗 해졌고 중 늙은이가 다되었지만 어릴적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 아직도 엊그제 같군요….
내년에도 동창회를 하게되는데 초청을 드리면 오실수는 있으신지요?

시간을 34년전으로 돌려 사춘기 소년.소녀가 되고 선생님은 초임 총각선생님 시절로 되돌아가
다시한번 철없이 뛰놀고 싶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선생님 존함입니다.
너무 반갑고 기쁩니다.
선생님!
자주 연락 드리고, 부산가면 꼭 찾아 뵙겠습니다.

박동진 올림.

2004/11/14 - Delete
최 주 수 박동진 부장!
제일 먼저 보내준 E-mail 기쁘게 받아 보았네! 회신한다고 보냈는데 연락이 없는 걸 보니 회신 메일이 않들어 갖는지도 모르겠네. 내 학교 E-mail은 읽기 확인이 없어 답답할 때가 많다네.
동진군의 자형이 영어 선생님이였음으로 영어노래를 많이 배웠다고 들었는 것 같은데, 자네는 유우머 구사능력도 많아서 적절할 때 "1 8 (십팔)"이라는 용어도 때 맞춰 잘 쓴 것으로 기억하네만 역시 학생 때 야무지더니만 역시 기대한 대로구먼,
언제든 초대하면 응할 터이니 초대바라고, 그전이라도 부산에 오느길 있으면 연락주려무나 항상 건강하고 행은이 함께 하길 기원하면서 안녕! 옛스승 최주수.

2004/11/14 - Delete
이혜화 세월은 강물처럼



오늘 선생님의 원고가 실린 웅동중학교의
교내신문을 받고 너무나 반가워 글 띄웁니다.

제가 누구인지는....잘 모르실지도...
수많은 제자중의 한명이겠지요.
제가 선생님께 배운 것은 영어였고

처음 초등학교시절에서 중학교 입학해서 저혼자
머리를 기르고 묶고 다녔기에 놀림도 많이 받았지요
처음 영어시험에 저랑 저보다 두해위인 남학생이랑
영어시험에 만점을 받았다고 선생님이 칭찬해 주셨던 기억!

저를 기억하시려면...저의 집 아랫채에 김종상선생님이
신혼방을 꾸미셔서 사셨고...저의 집을 사이로
변금자 가정선생님, 옆집에 김진한 미술선생님.
그 사이에서 그 은밀한 처녀총각선생님의 데이트를 다 보고
웃고만 있던 쪼꼬만 이 혜화라고 하던 학생입니다.

전, 지한오 선생님의 총애를 받던 이 은화, 이 혜화 자매였었고
김종상 선생님의 도시락을 매일 날랐던...그래서 제 교실보다
교무실 선생님 책상에 국물 흘린 도시락을 갖다놓고서야
제 자리 제 교실로 돌아오던 모범생이었지요.

그때의 국어실력으로...지금은 무명이나마 시인이 되었습니다.
열흘후, 나오는 첫시집을 그래도 선생님께 보내게 됨을 영광으로...

얼굴을 뵈니
총각시절 겅중거리며 다니시던 그 모습
그 열정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 지금이 그때보다 더 미남이시네요.

이번에 총 동창회 모임이 있어(21회)10월9일-거의 100여명이 넘는
친구들이 모여 하룻밤을 지새우며 놀다 왔습니다.
저로서는 중3졸업식도 않고 상경했던 길로
거의 30년이 넘는 세월에 처음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서울에서...군포에서 여수에서...박동진이란 친구는
동창회 다음날...미국출장후 열흘후...애틀란타 버지니아 LA를 거쳐
효숙이 효철이 미화를 만나고 왔더군요.

정말 반갑고 반가운 이름들.
선생님도 초임지의 추억으로 힘들고 암울했던 그때가
이제는 유채색의 그림으로 남아...정말 그립기만 하신가보네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강우랑 금방, 통화했어요
최주수 선생님이 널 기억하고 있더라구....그래?
회한과..반가움과...열심히 사는 강우...기회가 있으면
연락하고 살자구 했지요.

선생님...이제는 모두 교수님이라구....칭하겠지만
그때의 열정으로 우리가 자라고 어른이 되었으니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친구들을 만나보니...공부는 뒷전이던 아이들이 각계에서
훌륭하게 노력하여 성공가도에 있고
도리어 공부잘하던 몇몇은....힘들게 사회 열등생이었어요.
(만나보니...요절복통 에피소드...최주수선생님도 만만찮던데요)

부산에서 저보다 더 유명하고 실력있는 한해 선배, 김 형술시인은
여러분야에서 영화평론ㅡ음악-미술, 시등...정말 진해웅동의 자랑입니다.
그곳엔 시인 문인이 많이 배출되었지요.

그때의 그 어렵고 힘들던 고향이
지금은 경제특구..개발이 너무나 많이 되어 도회보다
풍요롭고 살기좋은 곳이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마음 뿌듯하기도 하던데요.

선생님...하시는 일에 항상 기쁨과 환희와
선생님의 그 밝고 열정어린 심성에 좋은 일들만
있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from 은혜와 평화
(은혜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

- 어둠속에서도 언제나 빛나는 vandy

이렇게 많은 이름을 가진 그때는 귀여웠던
이 혜화입니다.- 기억해 주시는 거죠?-

2004/11/15 - Delete
최주수 선생 To Vandy : 끝없이 빛을 발하는 반디불 처럼 필명이 좋구나!
이시인의 메일을 받고 역시 다르다 하며 가슴이 뭉클하였다.
시집이 곧 나온다니 기다리면서 보낼께. 시인들로 부터 직접 받은 책중 진정 제자라 할? 시인은 vandy가 처음이 될 것 같구나.
이제는 연로해 지니깐 -벌써 제자들이 교수가 되기도 하니 왜 안 늙겠나?- 점점 열정이 사그라 짐을 느낀다네.
웅동시절에야 경험과 실력은 부족하였지만 열정 하나로 모든 면에서 앞서서 버틸 수 있었지만......
한용운의 "님의 침묵"처럼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였던 것은 아니듯이 헤여짐을 다시 만남의 약속으로 새기면서 살아온 것처럼...
이번에 출판되는 vandy 시인의 따뜻한 마음씨가 아로새겨진 싯귀가 요즘처럼 혼란스런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고 머리가 맑게되는 청량제가 되어 깊이 새겨지길 바라면서 -행운을 빈다.
최주수 선생님이

2004/11/15 - Delete
박동진 샘..샘께서 보내주신 멜은 당근 잘받았습니다.
헤헤헤..샘하고 멜주고 받으니..제가 다시 중학생이 된것 같아
이렇게 재롱도 떨어보는것 같습니다.
와..샘 딸..이뿌네예...쥑입니다...
좀전에 혜숙이가 샘 홈피 주소를 알려줘서 들어왔습니다.
이제 저희들도 늙는가 봅니다.
자주 어릴적 친구들이 보고싶고, 고향생각이 그리워지는걸보면요...
샘...우리 부산서 만날때까지 건강하게 잘계시고
부산가면 저희들이 쐬주 사드릴께요.... 박동진 올림.

2004/11/15 - Delete
흰나리 동진님 반갑습니다.
이곳까지 오셨군요.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가 무척 부럽습니다.
저도 교직에서 학생들과 생활하고 있지만 점점 제자도 스승도 없어지도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답니다.
교사는 제자들이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답니다.
부산오셔서 아빠께 연락하시면 아마도 쐬주 찐하게 사 주실겁니다.
동진님꼐서 이쁘다고 하셨는데...사실 홈피에 있는 제 사진은 화장빨, 조명빨 게다가 포토샾빨 까지 총 동원된 사진이예요.
결론은 미인이 아닌거지요..
그래도 이뿌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4/11/15 - Delete
박동진 흰나리님...
교직은 천직이며 항상 존경을 받아야 할수있는 직업입니다.
대신 교사는 학생을 사랑으로 감싸줘야 하구여...
글구...아무리 조명빨,화장빨이라해도 원판불변의 법칙은
엄연히 존재하므로 좋은 바탕에 그림을 잘그리신거지요...
저희 막내딸도 올해 수능보는데 美大에 갈려고 준비중입니다.
그리고..우리큰누나는 올해 68세인데 올가을 서양화 부문에서
국전에 입상을 했답니다. 그나이에 대단하죠?ㅋㅋ

2004/11/15 - Delete
엄마 와!
짝짝짝!!!!!
대단한 누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웅동중 홈피에 위의 내용과 동진님의 답글을 학생 게시판에
걸어 놓았으니 한번 방문해 보시고 후배들에게도 선배로서
덕담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부산 한번오시면 저의 장끼인 궁중국수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2004/11/15 - Delete
조해숙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내 유년기를 지배했던 산과 꽃과 들과 냇물, 온갖 곤충과 가축.
그리고 대장골의 거센 바람 소리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고 감미로운 추억으로 오늘의 내 정신 안에 녹아 있다.
모깃불을 피워 놓고 멍석 위에서 은하수 흐름을 바라보며
별이 흐르는 만큼이나 자유롭고 아름다운 꿈을 키우던 여름 밤들.
얼마나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온 골목을 뛰어다녔던가.
겨울이면 겨울대로, 봄 여름 가을이면 또 그 계절대로
내게 부딪쳐오는 자연들은 언제나 경이로웠다.
나는 아마도 세상의 곳곳에 널려 있는 경이로움을 만나기 위하여
태어난 것은 아니였을까.
그리하여 가시적인 것 뒤에 숨어있는 은밀한 기쁨과 슬픔,
빛나는 진실의 얼굴을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을 쓰며 내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의 상식과 질서 뒤에 숨어 있는 삶의 참모습이다.
저 유년기의 때묻지 않은 감성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면
곳곳에서 어둠과 밝음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 밝음과 어둠의 직조와 행조가 만나는 자리마다
내 유년 대장골에서의 추억은 언제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준다..
.
.
선생님, 홈피에서 선생님 글과 사진들을 보며 제 소녀기의 기억 저장소에
유리알 처럼 곱게 박혀 있던 추억의 편린들이 하나 둘 일어섭니다.
선생님 글 속에 들어있는 여러 선생님 존함들과 강우 혜화 혜란 동진 숙미등
너무 예뻐 눈물 겨운 이름들... ...
우리가 간직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아름다운 추억 같아요.
수시로 꺼내 보아도 결코 닳거나 변색되지 않으며
때로는 새로운 느낌을 주기도 하니 말입니다.
선생님, 신효숙이라는 이름도 기억 하세요?
효숙이와 저는 초등 학교 때 부터 단짝 친구였고
나란히 중학교에 입학 했을 때 선생님께서 저희를 이뻐해 주셨지요.
효숙이네는 학교 바로 뒤에서 크게 문방구를 했고,
아버님은 학교 육성회 회장님이셨어요.
그리고 효숙이는 우리 반 반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현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잘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명칭 중에 친구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마다
제 마음은 가득 고이는 정감으로 넘쳐 흐릅니다.
이렇게 선생님과 교류가 되니, 저를 각별히 대해주셨던
지한오 선생님의 근황도 무척 궁금합니다.
연락처를 알 수 있다면 한 걸음에 달려가 만나 뵙고 싶은 선생님입니다.
어느 늦가을 쯤으로 기억되는데 선생님과 지한오 선생님 식사 대접을
저희 집에서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대장골에서 차린 정성스런 밥상이래야 된장 뚝배기와
밥 위에 얹어서 찐 계란 찜, 몇 가지 나물 반찬이었지요.
지금은 웰빙 밥상이라 하여 환영 받겠지만 그 때는 고기 반찬이
최고로 여겨지던 시절이라, 그 초라한 밥상이 어찌나 부끄럽고 긴장되던지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선생님 께서도 웅동 중학교가 첫 부임지라 남다른 감회가 있으신 것 처럼,
저 역시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자동차의 행렬에서 이탈하듯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으로 찾아 떠나는 곳은
예외 없이 웅동, 그리고 대장골입니다.
언제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장골 바람 소리를 추억하며 그곳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만나뵐 때 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2004/11/18 - Delete
박동진 서혜숙인데....
샘..혜숙이가 이제 망녕이 들었나 봅니다..지이름도 모르다니..
우헤헤헤....샘! 인기짱!
영어수업시간에 질문에 답못하면...이것도 모르나? 이놈아!
하시며 까까머리통을 톡 하고 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샘! 또 맞고 싶습니다. 한번만 때려주십시요..
그때 더맞았다면..영어를 더잘했을텐데.....흑흑...

2004/11/18 - Delete
흰나리 엄마 서해숙씨 죄송합니다.
보내 주신 글이 너무 좋아 글에 취해 혼자 읽기 아까워서 본인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서둘러 리플을 올리는 과정에서 조상을 바꾸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저의 성이 조 거든요.
박동진씨 왜 이렇게 빨리 들어 오셔가지고 제가 수정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가시나요.
친구 이름은 혜숙이 아니고 해숙입니다.

2004/11/18 - Delete
박동진 앗! 사모님이시다...사모님...40이넘어도 제자는 제자고 스승은스승이시라 저희들이 선생님께 재롱을 떨어봅니다. 귀엽죠?
사모님...궁중국수도 먹고싶고...선생님과 밤새 옛날얘기하며
놀고도 싶습니다. 시골서 자란 촌놈들이라..감성이 도시사람과
좀 다르지만 심성이 착한애들이니..사모님..이쁘게 봐주십시요...
그럼 사모님 다음에 만날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요..

2004/11/19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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