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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인심 2008/09/25
최주수 님의 글입니다.

         고 향 인 심

  내 고향 하동 북천 남포동도 작금의 농촌 현실처럼 농사도 기계화되어 젊은이들은 대부분 시골을 떠나고 연세 많은 어른들만 남아있고 동네에는  어린이 울음소리 듣기도 어렵고 집집마다 울음소리 그친지가 오래된 현실로 되고 있다.
동네 앞 마을회관 앞에는 수백 년 느티나무가 수호신인양 변함없이 동네를 잘 지키고 있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매년 백중일에는 동네사람 다모여 동네의 평안과 가을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도 지내고 백중 명절을 보람 있게 보내고 하였는데 옛날 같지는 않지만 객지에 나가 있는 출향인사들도 형편이 여의하면 참석하기도 하여  뜻있게 하루를 보내곤 하였다.
대만에 연수차 갔다 와서 정리도 좀 할 겸 오랜만에 고향집에 들렸다가 주위를 둘러보다 발을 다쳐 곧 되돌아 온 후 궁금해 안달을 하고 있으니 고맙게도 사위가 이번 여름휴가는  처이모와 이질 조카사위(이질 조카사위와 우리사위가 부산대 동창)와 함께 가족 여름 휴가지를 북천 별장으로 하여 제초작업 등 주위정리도 좀 해보겠단다.
8월 1일 밀리는 남해안 고속도로로 왼발은 깁스를 한 상태로 운전을 하여 점심시간 쯤 북천에 도착하니 우리 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사위일행들이 오랫동안 오지 못한 고향별장의 청소와 대문 앞 등 급한 제초작업에  젊은 사람들이 매달렸지만 농촌체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이라 효율은 나지 않고 연장만 탈이 나는 형편이었다.  방청소와 정자 등 급한 곳만 정리하고 잔디밭 야외식당에서 숯불 바비큐로 동동주와 저녁을 해치우고 정자에서 폭포소리를 들으며 여름밤의 첫날 휴가가 시작되었다.

내일 아침 해먹을 쌀도 없다기에 창고에 남아 있는 무공해로 농사지은 벼로 아침거리로 위선 한두 되 정도의 소량의 정미 탈곡을 시도하였는데 서투른 솜씨이고 장마기에 습기 차서 중간에 도정기가 고장이 나버렸다. 걱정이 된 나머지 집사람이 동네에 나가 마실 나온 아지매 들에게 얘기했더니만 저녁에 쌀을 주는 사람도 있고 또 뒷날 꼭두새벽에 쌀을 가져다주는 사람 깻잎장아치 등 밑반찬을 갔다주는 등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 고향인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둘째 날은 젊은이들 부부와 애들은 하동 골프리조트(횡천)의 야외 수영장으로 가고 나와  처형과 집사람은 옥종온천으로 가서 내가 김도조 님과(같이 근무한 과거 옥종고교 행정직원)  오랜만에 한잔하는 사이 온천욕을 하고 식사 후 북천에 동네에 있는 北岩寺에 들러 돌아가신 처부모와 처형들의 백중날 천도재를 부탁하고 저녁예불 후 집으로 초대하였다.
저녁에는 정자에서 폭포소리도 들으면서 옥수수 등을 먹으면서 나는 곡차도 한잔 들면서 모기와 대치한 방장 안에서 스님과 자유스런 설법토론도 하면서 그 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8월 3일)은 처형이 저녁에 부산에 용무가 있다고 하여 처형 일행은 부산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지리산 기슭 덕산 신천초등학교 교정에서 매년행하는 진주고 35회 하계수련회에 깁스를 한 상태로 참석하여 진주 친구들의 열열한 환영을 받으며  부산에서 온 친구들이랑 어울러 놀다가 오후 늦게 북천으로 돌아왔다가 예정을 바꾸어 그날 저녁은 북천에 머물지 않고 차가 조금 덜 밀리리라 예상되는 늦은 시간에 북천을 출발하여 중간에서(마산 인근) 저녁을 먹고 부산으로 돌아와 북천에서의 깁스를 한 채로 하계휴가를 잘 마쳤다.
  다음날 저녁에는 골절에 좋다고 전부터 약속한대로 창원사돈께서 준비해온 민물장어구이 파티를 사위집에서 푸짐하게 하고는 또 그 뒷날 배냇골 청수장에서 재민이를 위한 물놀이를 겸한 휴가를 약속하여 민물매운탕과 한방닭백숙을 안주삼아 동동주로 재밌는 하루를 보내며 사돈끼리의 유대강화와 아울러 사돈은 사돈대로 나는 나대로 애들이 계산 한 것처럼 서로 모르게 계산할러는 시도도 결국 탄로가 나서 결국 애들이 덕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자 백중명절로 매년 고향마을에서 돼지 잡고 당산제를 지내는 날이며 올해는 동네 북암사에 처부모와 처형들의 천도재가 있으므로 아침 일찍 출발했으나 마산~ 함안간 밀리는 남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늦지 않게 고향 마을에 도착하여 옛날과는 달리 자꾸만 출향인사가 당산재에 참석하는 일이 줄어드는데 비하여 참석해 준 것에 대한 열열한  환영으로 제사 전에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제관으로 당산제를 지내고 바로 북암사로 가서 천도재를 지내고  마치는 것도 보는 둥 마는 둥 동네회관에 내려오니  다른 해와는 달리 참석인사도 적어 벌써 잔치가 파장이 되어 가고 있으므로 늦은 점심식사와 집사람이 모기가 무서워 저녁에 부산으로 돌아올 것을 사정하므로 술도 금하고 가능하면 일찍 출발하기로 하여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이번에 처부모를 모신 북암사는 본인 선친과도 인연이 있는 사찰이며 나를 포함하여 아내 아들 몫의 애기부처도 모셔져 있으므로 어떤 인연으로 밀양 미림사에 모셔져 있는 내 부모님도 가능하면 이절로 옮겨와 모실까하고 생각하며 이를 기념하여 집사람은 供養間 건축불사에 가능한 시주도 계획하고 있다. 늘 고향에 들릴 때 마다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나 옆 정자에 있는 분들과 음료수나 맥주라도 한잔씩 하면서 고향이야기도 나누기도 하였고 또 올해에는 본인이 활동하고 있는 동래로타리 클럽과 본 마을이 맺은 자매관계가 활성화되어 타의 모범적 관계가 지속되어 보길 기대해 보지만 자꾸만 줄어든 인구와 특히 옛날은 주인 행세하던  전주최씨 집성촌이 이제는 타성이 많아지는 현상과 또한 달라지는 풍속도를 보면서 그래도 친인척이 많은 내 고향의 살아있는 인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지난 일년은 본인의 안식. 연구년으로 복교를 바로 눈앞에 두고 고향에서의 출판기념회, 로타리클럽과 자매결연, 초등학교와 자매행사, 면민 및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 경로행사, 메밀 및 코스모스 꽃축제 등 많은 추억거리 행사들이 뜻있게 이루어 졌으며  이번 여름에 고향에서 다친 다리 골절의 회복과 관련하여 앞으로 동네의 생활상도 회복하고  고향의 인구와 인심도 줄지 않고 지속되기를 기원해 본다.  

               2008년 8월 26일 복교(개학)를 하루 앞두고,  최 주 수  찬

하동 북천의 남포마을..
여느 시골처럼 이젠 젋은이들보다 어르신들이 더 많은 곳이지만 그래도 훈훈한 정이 넘치고 포근함이 느껴지는 정말 고향다운 곳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멀기는 하지만 갈때마다 기분좋아지는 곳이기에 이렇게 다녀오고나면 금방 또 가고싶어집니다.
지난 여름에 장인어른의 손길이 조금만 덜 미쳐도 금새 그 표가 났기에 그간 장인어른께서 얼마나 정성스럽게 남포집을 관리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2008/09/30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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