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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축하 서울나들이 2008/11/25
최주수 님의 글입니다.

     개원과 서울 나들이

  정형외과 전문의인 아들이 公保醫 복무 후 척추수술에는 세계적 권위자로 세계인명사전(who's who)에 등재된 서울대학 선배 병원에 취업한 후 병원운영상 우여곡절도 겪었고 그 후 조그맣게 운영하던 정형외과 의원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위하여 서울의대 외래조교수직은  유지한 채로 선배님과 공동운영하기로 하여 적당한 곳에 확대이전하여 네 사람이 힘을 합쳐 11월부터 새롭게 진료를 하기로 하였단다.
  우리는 그 분야에서는 문외한 일뿐 아니라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는 하나라도 부담시키지 않겠다는 아들의 확고한 생각이 밑받침이 되어 어떻게 준비가 되는 지도 모르고 개원 후 처음 맞는 주말에 부모된 마음으로 뒤늦게나마 개원축하방문을 하기로 하였다(뒤에 안 일이지만 아들 몫은 거의 의료기계 분야 리스 차지).



  병원 개원에 적당한 선물을 생각하다가 평생 좌표가 될 만한 명언을 담은 액자를 준비하기로 하여 아직은 내 글 솜씨가 탐탐치 않아 스승이신 대서예가 동헌 선생님께 미리 부탁을 하여 마련한 仁術濟世 액자를 찾고  보니 차 트렁크내는 가망이 없고 차내에 대각선으로 넣어진다고 해도 탑승객이 불편하겠고 기차나 고속버스 등 서울까지의 운반 수단을 이리저리 궁리하던 중 마침 妻姨姪壻가 근무하는 대우자동차의 회사용무 겸 회사특별찬조 라이브 콘서트로  “비” 공연을 관람하러 자기 차를 운전해 간다기에 사전에 액자를  넣어 보는 둥 점검을 해보니 다소 불편하기는 해도 별 문제점이 없어 보였다.
  조카사위는 우리 아들내외의 관람권까지 용케 확보하였으며 서울에 도착하여 그날 해치워야 할 일과 그 날이 토요일임을 감안해서 되도록 일찍 출발하자고 하였는데 낫낫한 조카사위 덕분에 기대보다 더 일찍 새벽 6시경에는 출발할 수 있었다.



  12시경에 병원(논현동 학동전철 10번 출구 Y. D. 빌딩내 “시너지 정형외과 전문병원”, Tel: 02-2015-1300)에 도착하여 아내와 나는 여러 가지 검진과 처방을 받은 후 아들은 병원의 잔무를 정리하고 우리들은 전직원이 40여명이라는 병원을 서둘러 지하 1, 2 층의 여러 가지 검사실과 식당 등, 지상 2층의 진료실, 행정실, 원무과, 본부, 간호실, 진단실과 3층의 50 여 병상의 입원실을 둘러보며 병원용으로 건축한 새 건물이라 깨끗하며 정원의 멋진 老松의 식재 등 조경의 뛰어남을 맛보며 의원이 아닌 병원으로서 뭔가 앞으로 잘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들 진료실에는 가져간 “仁術濟世”라는 액자를 잘 걸도록 부탁만 하고는 또한 아내는 간호과장에게 개원일 다른 공동 원장님의 어머님께서 베푸셨다는 “떡잔치‘를 우리도 늦었지만 직원과 입원환자는 물론이고 빌딩내 다른 직원들에게도 고루 나누어 베풀도록 부탁을 한 후 바쁜 마음으로 막내 여동생이 공동 경영하는 "metrocity Italy"라는 상표의 golf wear 전문회사(디오존)의 일 년에 한두 번 개최하는 “대바겐세일”에서 가족들에게 어울리는 옷이라도 몇 벌 건질 생각으로 서둘러 가보니 3일전부터 시작된 바겐세일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나와 아내는 새아기와 여동생으로부터 신상품을 선물받기도 하고 또한 사기도 하면서 가족들에 어울리는 것도 몇 벌 건질 수 있었다.



  7시부터 올림픽 경기장 제2체육관에서 공연되는 “GMdaewoo lacetti premiere runching festival”의 “비 라이브 콘서트” 는 6시 반까지 입장이 완료되어야 하는데  총 5천석은 일반 A, B, C 그룹과 지정석 및 vip 석으로 나누어져 있어 일반석은 좋은 좌석을 차지할러면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 일행의 성화에 5:30분에 입장하여 주위를 둘러봐도 나와 같은 흰머리들은 없고 애송이와 학생들 천지였다.
  손범수와 손정민의 사회로 시작된 페스티벌이 GM daewoo 글리말디사장의 인사와 경상도 사투리가 돋보이는 국토해양부차관 등의 인사와 가수 구준엽의 레이저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비”의 공연이 시작되어 젊은이들은 괴성과 함께 뛰고 난리지만 난 아무래도 세대차로 동화되어 한 덩어리가 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사실 난 그때까지도 가수 “비”대신 "B-boy"의 “뛰고 넘고 돌고” 하는 댄스로 착각하고 있었으니깐. 이런 공연에 점수가 후하지 않은 다소 보수적인 아들까지 호평인 것을 보니 자기들의 선전처럼 <“비”>가 월드대스타 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9시가 되어 공연장을 나서니 운동장에서 축하 불꽃놀이가 밤을 수놓고 있으며  “비”의 멘토대로 “첫눈”도 (인공적으로 종이가루로 만들어 뿌리고 있었음) 내리고 있었다.

조카사위내외는 그들의 친구와 어울리고 아들내외 등 우리일행은 특식이라는 월남 쌀국수 집에 가서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침 일찍 부산서 출발하여 서울에서 검진하고 바겐세일에서 구매에 참여하고  비 공연까지 평소에도 기분에 죽고 살아 기분이 좋으면 잘 견딘다는 아내에게는 아무래도 무리가 되지 아니 하였나 걱정하면서 그날은 땀이 소록 날 정도의 따끈따끈한 아들집에서 피로를 풀었다.
  뒷날은 느지막하게 일어나기로 약속하였지만 항상 일찍 일어나는 습관화는 어쩔 수 없이 자는 척 누었으나 좀이 쑤셔 그냥 있지 못하고 책을 보는 둥 시간을 때우다가 2-3일 전부터 시부모님 오신다고 회사도 하루 쉬면서 준비한 성찬을 다 챙겨 먹지도 못하고 아침만 집에서 먹고 점심은 아들 녀석이 기특하게도 이종사촌 누나와 매형을 대접해야 한다고 해서 압구정동에서의 점심을 끝으로 4시 발 KTX를 승차하러 오는 길이 정체되어 역입구에서 나는 먼저 내려 달리기와 줄서기에 양해 받아 예약한 표를 겨우 티케팅해서 아슬아슬하게 승차할 수 있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자기들의 사촌계모임 주관으로 이번 서울나들이에 동행하지 못한 사위가 마중을 나와 있어서 모두 같이 우리 아파트 근처 “진 샤브 샤브”에서 마일리지 포인트로 “서울음식은 저리 나가 노라라” 할 정도의 맛있는 저녁식사 겸 서울서는 체면치레로 한 잔도 못 얻어 걸친 소주 한 병을 해 치우면서 다시 한 번 인술제세와 병원경영에도 대박을 기원하면서 성공리에 이번 개원축하 나들이의 막을 내릴까 한다.
              

2008년 11월 11일, 아내를 동래여고 동기 회갑기념 여행에 보내고,  최 주 수 찬

비 공연을 비보이 공연이라 아시고 서울까지 가서야 비보이 공연이 아닌걸 아셨다는 말씀에 살짝 놀라면서도 공감이 듭니다.
사실 저도 비 노래를 듣노라면 그게 노랜지 뭔지 잘 모르겠는데 장인어른 연배의 어르신들이야 저보다 더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나저나 처남이 개업을 한걸 알았다면 어떤식이건 서울에 한번 가야하는건데 시기를 놓쳐버린것 같습니다.
사촌들 모임이야 한번 연기하면 되지만 처남의 병원 개업은 연기가 안되는 다른 본질의 문제인데..
다음에 처남이 오면 섭섭치않게 식사라도 같이 해야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이처럼 좋은 글도 많이 올려주세요.
요즘은 장인어른께서 홈페이지에 가장 많은 글을 올리시는 최우수 작가님이십니다..^^

2008/12/03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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