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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월 혁명을 되새겨보며 2015/05/16
최주수 님의 글입니다.

4월 혁명을 되새겨보며

55년전 이승만 독재정권과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데모로 시작되는 의거는 4.18일 고려대 시위를 불길처럼 확산시켜 19일은 교수들의 지지선언으로  전국적인 학생운동과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역사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전개되어 나갔고 드디어는 이승만 정원의 하야와 파트너였던 이기봉의 죽음을 가져오게 됨으로서 정권은 무너졌지만 시위주동인 순수한 민주학생운동조직의 불완전으로 어부지리적인 내각제의 민주당 정권의 수립을 가져왔으나 내분으로 제대로 활동도 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하다가 군사혁명으로 군사정권의 탄생을 가져오게 하였다.  
본인은 그 당시 중학생 시절로 별다른 활동이나 사상이 정립된 것도 아니고 어린나이에 주위의 변화와 운동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어리둥절할 때였다.

그 후 점차 민주화의 의미를 되새길 틈도 없이 군사정권에 의한 혁명적 조치가 이루어 졌으며 어느 면에서는 국가적 재건과 경제발전을 이루게 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학생운동의 중심점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고 정계에서도 분열과 시끄러운 대립만을 일삼다 맞게 된 군사혁명에 오히려 국민들은 박수를 보낼 정도의 사회분위기와 그 이후 시작된 군사정권에 의한 공업입국으로의 도약과 새마을 운동, 국가재건과 경제개발 계획에 의한 경제부흥은 많은 성공을 이루어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이 세계역사상  단시일 내에 경제개발과 민주화 달성으로 선진국의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그 당시 4월 혁명에 참여하여 국가의 민주화에 기여하다가 돌아가신 애국자와 부상자들은 국가경제의 빈약함으로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많은 시일이 지나 광주사태 등 민주화운동이 보상받게 됨으로 다소 보상을 받게 되었지만 나라를 위하여 흘린 피와 영혼을 생각할 때 순수한 그 애국행위와 놀러가다가 침몰한 배사고로 야기된 세월호 사건과 비교해 보면 세월호 사건처리가 너무 과한 욕심과 보상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다.
보상 문제 등 세월호 유관 문제는 국론 통일과 앞으로의 국가장래를 위하여 하루 빨리 매듭을 짖고 발전을 위한 일상생활로 복귀해야 국가의 장래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인데 반대를 위한 반대와 사회곳곳에 침투해 시끄럽게 판을 치는 종북세력들의 발호로 국가가 조용할 날이 없으니 국가의 장래도 심히 걱정이 된다.

이젠 세월이 흘러갔다고 4월 혁명 영령들에 대한 추도의 의미를 계승하자는 운동은 사라지고 사회 구석구석에 종북세력 또는 반국가단체들의 운동이 판을 치고 있으니 국가장래를 염려하는 애국시민들은 활동을 하고 싶어도 활동 할 수도 없는 분위기로 몰고 가고 있고 작금의 정치계에 불어 닥친 정치비리의 성완종 파장에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할 국회는 어떻게 마무리 될지 그 추이를 지켜보기에 지쳐있고 앞장서야할 양식 있는 지도자들도 혹시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물러나서 관망만 하는 태도이니 박근혜정부와 국가장래가 암담할 뿐이다.
영령을 추모하는 심산인지 또는 돌아가신 영령들께서 국가를 위해 흘리는 눈물인지 궂은비가 내리니 나 역시도 암담한 마음에 55주년 4.19 혁명일이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서글프기만 하고  후배로서 영령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부디 국가장래를 위한 일들이 빛을 발하기를 기원하며...영령님들 편히 잠드소서!

55주년 4월 혁명 기념일에, 옥당 최 주수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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