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방==========

이곳은 흰나리 친정 아버지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아내의 회갑기념 가족여행 2009/04/14
최주수 님의 글입니다.

                                                                                                                                                                                                                                                                  아내의 회갑기념 가족여행

   요즈음 평균수명이 훨씬 늘어났으므로 회갑연은 가족여행이나 가고 칠순잔치를 하는 풍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들 하여 마침 4월 1일이 아내의 회갑일이라 우리도 유행에 뒤떨어질세라 흉내 내어 보기로 하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도 엄청나게 압박받고 있고 수술일정 등이 잡히면 혼자만 빠져도 수술진행이 되지 않는 정형외과 전문병원장인 아들의 형편도 생각하면서 가능하면 아들딸의 사돈 분들도 동참할 수 있는 제주도 여행을 나는 희망하였으나 사돈들의 참여도 어려울 것 같다고 하고 아내의 위암 투병과정을 겪어본 아들이 어떻게 살아나신 어머니인데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제주도는 다음에나 가고 모든 부담은 자신들이 할 터이니 병원근무 사정을 고려해서 우리들은 금요일 하루 앞서 부산에서 출발하고(09:30), 아들내외는 수술을 조절하여 잡지 않을 수 있는 토요일에 일찍 출발하여 엔화상승으로 부담감은 느끼지만 사위의 신혼여행 경험으로 휴식으로는 괜찮다는 네덜란드 풍치를 느낄 수 있다는 가까운 일본의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로 하루만의 연가로 모두 가능한 무리 없는 휴식여행을 자녀들의 준비로 실행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3월 27일~29일).
  아버지의 묘비제막식이 4월 5일 청명. 한식일에서 사정에 의하여 연기되는 바람에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사위의 세심한 준비로 어려움 없이 제대로 진행되어 갔으나 이륙 후 반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일본 유학시에도 한번도 방문한적 없는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지하철로 하까다역까지는 잘 갔으나 하까다역에서 JR line 하우스템보스행 특급 free-ticket을 발급받아 갈아타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11시 20분 특급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하다가 겨우 탑승하여 힘들게 제자리에 앉고 보니 어렵소! 좌석을 찾아오는 와중에서 내 팔에 걸었던 집사람의 작은 핸드백(귀중품은 없었지만)을 떨어뜨려 지나온 기차간을 찾아다녀 떨어져 있는 핸드백을  다행히도 찾기는 하여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출발부터 해프닝을 일으켰다.





   하우스텐보스역에는 오후 1시경 도착하여 입국수속과 <덴하그호텔>까지의 수화물운반을 부탁하고는 하우스텐보스 입국장(입구)을 들어서니 온갖 다양한 색깔의 튜울립이 바람결에 반갑다고 인사하며 그외 돌아가는 풍차와 여러 가지 네덜란드식 풍경들이 우릴 맞이하였다.
위선 민생고 해결로 일본화폐가를 우리식으로 계산하면 쉽게 손이 안가지만  판프렛에서 본 <돈돈>이라는 일식집에 찾아가 김해공항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한 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나가사키짬뽕>으로 점심을 해치우고 식당 바로 아래 지하 1층에서 운하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하우스텐보스를 배로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이곳 하우스텐보스는 17C 네덜란드 범선의 첫 상륙지를 기념하여 네덜란드식 유람휴식처를 조성한 것으로 물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보여주는 실내 스케일로서는 감탄을 자아내는 네덜란드 대역사에 남을 대홍수가 객석을 삼킬 듯한 “horizon adventure plus”, “Huis ten bosch IFX theater Kirara”, “Future caster Ⓡ theater”, “2차원, 3차원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것” 등 다양한 볼거리와 놀이기구 들이 있었지만 역시 황혼기에 접어드는 세대라 안간힘을 써보지만 젊은이처럼 체험보다는 구경에나 힘이 쏠리는 것 같습니다.
하우스텐보스내 무료순환버스가 있었지만 구경하면서 걸어걸어 덴하그호텔까지 와서 배정받은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저녁식사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시간적 여유가 있어 하우스텐보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가 있는<돔토른>에 올라 석양의 멋진 전망을 먼저 감상하기로 하여 미군기지가 바로 내려다보이는데도 군부대 같지 않은 평화로운 전경하며 사방의 전경들을 두루 감상하다가 그 아래에 있는 월드레스트랑 지역의 스테이크하우스로 갔었는데 기다리는 차례대로 인원수와 인솔자를 적어놓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도 십오륙 분을 기다린 후 자리 잡고 보니 생각보다 맛있는 음식이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붐비는 이유를 역시 알 것 같았다.
  저녁식사 후 호텔에서 조금 쉬다가 8시 40분에 시작되는 불꽃놀이가 high-light라며 많은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동남아 및 여러 나라 사람들이 대기하며 참석하여 박수치고 감탄을 하지만 부산 광안대교의 세계적 불꽃놀이에 익숙해져 눈이 한껏 높아져 있으므로 별로라는 느낌을 받았다.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아내와 손주녀석은 피곤하였든지 살며시 잠든 후에 사위가 여행백에 챙겨온 과자 부스러기와 컵라면을 안주삼아 부담 없이 살큼 삶은 김치와 곁들이는 소주 한잔이 “팔진미 오후청도 이 맛과 바꿀손가?!”하고 저절로 애주가의 탄성이 터져 나오게 한다.






   아침은 호텔식당에서 뷔페음식으로 김치는 없지만 각자의 취향대로 삶은 달걀을 비롯해서 과식이라 할 정도로  아낌없는 식사를 하고는 아침에 일찍 나 혼자 산책했던 하우스텐보스의 상징인 네덜란드 여왕 궁전의 외관과 정원을 재현한 <팰리스 하우스텐보스>를 우리 모두 가서 궁전 정원에 피어있는 튜립을 주로 한 여러 가지 꽃향기에 젖어보며 궁전내의 미술관 등을 관람한 후 <오오무라만>을 향해 나가는 네덜란드식 범선체험에 나셨다.
개구쟁이 외손자 재민이는 항해 중 일본선원들의 도움으로 밧줄꼬기와 배 앞부분의 발아래 깊은 바다가 보이는 그물위로 걷는 체험도 멋지게 해내는 등 초등학생으로 자주하는 편인 체험여행에 기뻐하는 것을 보니 흐뭇하기도 하였다.    
  우리보다 하루 늦게 도착하는 아들과 새아기를 만나러 입국장 앞으로 갔다. 벌써 들어왔어야 할 시간인데 들어오지 않아 입구에서 직원들에게 말하고 사위가 손도장을 받아 입국장 바깥으로 나가보니 아들 내외가 호텔로 짐을 보내기 위해 줄을 서있는데 마침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한참을 기다린 후에 해본 솜씨로 드디어 호텔로 짐들을 보내는 수속을 취한 후 입국장 안에서 우리 가족은 다같이 만나 서로 웃고 얘기하며 걸었습니다. 입국장을 지나 풍차와 튜울립이 있는 멋진 풍경을 뒤로 하고 일단 입국장에서 제일 가까운 뉴스텃트 지역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스모키하우스>라는 이 식당은 하우스텐보스에서 우리가 가 본 식당 중 유일한 셀프서비스 식당이었고 솔직히 다른 식당들에 비해 맛도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식사 후에 전날 우리가 보고 들어가 본 것들 중에서 제일 정수만 골라서 우리 가족 모두 함께 구경 한 후에 숙소로 돌아오는데 마침 전날 우리가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중앙광장에서 하던 깃발쇼가 진행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그렇게 많이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색적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지 사위는 열심히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숙소인 덴하그호텔로 왔다.
  호텔로 돌아와 확인해 보니 5층은  빈방이 없어서 아들내외는 6층에 방을 배정받았다.  일단 짐을 풀고 정리한 후에 전날 점심때 맛있게 먹었던 나가사키짬뽕을 또 먹으러 갔는데 마침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까지 들고가서 먹으니 이 또한 금상첨화였다.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 인천공항-후쿠오카공항-하카다역-하우스텐보스역 등등을 돌아 오후에 하우스텐보스까지 다녔으니 새아기가 많이 힘들었겠다 싶어 조금 일찍 숙소에 돌아와 각자 방에서 씻고 쉬다가 9시경에 다시 모였다. 호텔 방안에 있는 와인잔에 아들이 가져온 고급 와인을 부어 와인도 한잔씩 하고, 새아기가 한국에서 구워온 쥐포에 고추장을 찍어 먹고, 또 컵라면과 김치에 소주까지 한잔 곁들이니 이것도 참 즐거웠는데 삶은 계란 하나 넣은 컵라면을 꼭 먹겠다던 손주녀석은 일정이 고단했는지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밤이 깊도록 웃고 얘기하면서 또 하루를 마감하였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부터 외손자 재민이는 외할머니에게 배운 영어와 일본어 몇 마디로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순환버스에 뛰어가 “좃도 맛데 구다사이(조금만 기다려 주세요)”“I am from Korea”등을 써먹기도 하였다.
오전에만 머물고 떠나야 하므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편안하게 구경하는 게 좋겠다 싶어 일단 운하를 따라 움직이는 배를 탔는데 전날은 반바퀴였지만 마지막이다 싶어 한바퀴를 다 탄 후에 유람선 출발 지점부터 다시 걸으면서 튜울립이 화창한 풍차화원, 꽃밭산책, 치즈버터상점 들을 돌아다니며 이색적인 것이 보이면 여유롭게 기웃거리기도 하고 <팰리스 하우스텐보스>에서 만난 어느 야외결혼식에 꽃가루를 뿌리며 축하도 해주고 회전목마가 나오길래 손자를 비롯한 젊은이들이 타보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함께 사진도 찍고 다시 오기가 어려운 멋진 풍경들을 보다가 번뜩 생각난 후쿠오카 시내에서 점심은 회전초밥을 먹고 시내구경도 할 겸 예정보다 하우스텐보스를 두시간정도 먼저 떠나왔는데 출국장(하우스텐보스 출구)에 나와보니 아직  호텔에서 짐이 도착하지 않아 상당히 기다렸다가 짐이 도착하자말자 잽싸게 움직여 알맞게 하까다행 열차를 탈 수 있었는데 일요일 오전 시간이 빨라서인지 처음엔 기차 한 칸을 우리 가족이 전세처럼 독채로 타고오면서 준비한 삶은 계란과 과자를 먹고 하다보니까 어느새 하까다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후쿠오카의 하까다역에 도착해 보니 편하고 만만하지는 아니 하였다. 우선 점심식사부터 해야 되겠길래 사위가 인터넷 블로그에서 뽑은 회전초밥집을 아내와 나는 일본어가 통하므로 물어물어 찾아가 초밥종류보다는 접시색깔에 정신을 집중하면서(한 접시 2~3개 초밥이 종류별로 150엔에서 500엔 정도로 접시색깔로 가격을 알 수 있으므로)눈치 보면서 몇 접시씩 먹기도 하였는데 언제쯤 눈치 안보고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세계를 휩쓰는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올런지?!
  식사 후에는 코인락카를 찾아 동전을 교환하여 모든 짐들을 보관함에 넣어두고 3시간 정도의 여유를 두고 후쿠오카 관광을 했는데 예전에 아내가 아들 고등학생시절의 학부모들과 와본 적이 있다는 커넬시티(canal city)로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커넬시티 입구에서 시티지하로 가보니 운하가 아주 멋진 그런 관광지가 아니고 지하로 흐르는 냇물을 운하로 만들어 젊은이들이 모이는 복합쇼핑몰이었다. 운하 주변에는 각종 이벤트를 하는 곳이 많았는데 손주녀석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일본 어느 프로 야구단 이벤트에 흠뻑 빠지기도 하였다.
  일본에 와서 일본 전통라면을 한번 먹어 봐야하지 않겠나 싶어 그곳 5층에 있는 라면전문점에 갔었다. 일본 각지의 다양한 라면들이 있는 라면레스토랑에서 너무 친절한 일본아가씨의 안내를 받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만만치도 않은 맵싸하고 국물이 시원했던 라면을 한 그릇씩 뚝딱 먹은 후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엄청나게 키가 큰 서양인 목발 삐에로 아저씨가 우리 가족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재민이가 놀라서 혼비백산하며 도망을 치고 그런 모습을 보고 웃으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일본어가 아님을 알아챈 삐에로 아저씨가 " Where are you from?" 하고 물으니 영어학원에 몇 달 다녔다고 손주녀석이 "from Korea!!!"  하고 대답했고 그러자 삐에로 아저씨가 잠시 기다리라며 풍선을 불어 멋진 꽃게풍선을 만들어 주었다.





   커넬시티를 떠나 하까다역에 도착 후 코인락카에서 우리 가방을 찾아 공항으로 와서 텅 빈 1층의 대합실 한쪽 구석에서 무사여행을 종식하는 이벤트로 남아있는 소주로 모두 감사의 건배를 하면서 다음 여행을 또다시 기대하면서 우리들은 7:40분 부산행, 아들내외는 우리보다 2시간 늦게 출발하는 서울행 출국 수속을 마치고 아들내외만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것이 몹시 안쓰러운지 아내는 금방 슬픈 표정을 짓고서 그곳 후쿠오카를 떠나 비행기 안에서 우리 돈으로 살 예정이던 면세 담배와 술을 팔지 아니하여 사지 못한 채 금방 부산에 도착했고 사위가 가본 적이 있다는 해운대 센텀시티의 어느 곰탕집에서 김치를 잔뜩 넣은 곰탕 한 그릇씩을 “역시 우리 것이 최고야!” 하면서 해치우고는 집에 도착하였다. 잠시 후 인천 공항에 내렸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으며 이번 여행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아내의 갑일인 4월1일에는 부산가족만 함께 식사한다는 아쉬움을 앉은 채 동참해주고 수고해준 모두에게 다함께 감사를 드리면서 특히 건강을 되찾아준 아내에겐 고마움과 항상 건강하길 기원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주말을 끝냈다.
  
                   2009년  중춘에(4월 10일)  최 주 수 찬



        
                  
일본 여행이라 그런지 더더욱 장인어른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하카다에서 하우스텐보스로 가는 프리패스 열차이용권을 끊을 때에는 시간에 쫓겨서인지 왜 그리도 마음을 졸았던지...
이제 여행을 다녀온지도 20여일 남짓 지나 일상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감흥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정말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모두 지금처럼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2009/04/17 - Delete
이전글

  선부군의 묘비 제막식을 마치고 [2]

최주수  
다음글

  기축년을 맞이하면서

최주수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위로... 메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