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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생각나는 그해 여름 2019/06/15
최주수 님의 글입니다.

또 다시 생각나는 그해 여름

최 주 수(choijs508@hanmail.net)

4월도 사라져 간다. 오늘은 보슬보슬 마음도 적셔주는 비가 내린다. 내일 임플란트 시술이 있어 서재를 정리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면서 상념에 잠겨 있다.
고향 생가별장에 자주 간다는 것이 생각 보다 쉬운 일만이 아니라는 것과 때론 차분하기 보다는 뒤 쫒기는 압박이라도 받는 기분에 마음이 답답하기도 한다.
고향에 지난해부터 와있는 동생에게 전활 걸어보니 집안 남새밭에 고구마를 심었다는데 올해엔 생가를 방문하는 친지들과 군고구마를 즐길 생각만 해도 난장판 국회에 일그러진 마음이 다소나마 가라앉는 것 같다.
엊그제 부산수필문학회 춘계문학기행에 마침 심해진 감기몸살로 동행하지는 못했지만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김수환 추기경 생가 등 또한 멋진 기행문이라도 떠오를 것 같은 참여 문인들이 보내주시는 기념사진들을 보면서 옛 생각에 젖어들어 이 글을 쓰게 된다.

젊은 그때 부부교사 시절과 특히 나보다 먼저 등단한 수필가이었던 승천한 아내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지워지지 않고 슬며시 떠오르는 것은 승천한 아내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았기 때문임을 지금의 집사람께도 미안감과 함께 이해해 주리라고 믿으면서 마음만은 찹찹하다.
업무로 바쁜 학장보임 중 위암이 의심된다는 아내의 건강검진으로 당시 서울대 병원에 근무하던 아들이랑 함께 동의의료원에서 정밀검사 후 위암확진으로 허둥거렸던 일들이 떠오른다.
서울대병원에서 상당히 진행되었지만 정성껏 아주 잘 끝냈다는 수술 후 그 힘들어 하는 6 번의 항암치료를 잘 견뎌내면서 요양적인 생활을 위하여 부산인근의 전원주택을 찾아 헤매다가 부산에서 멀긴 하지만 비어있는 고향 하동의 이백년 고가인 생가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아내도 찬성하여 개축비용 등 모든 결정을 아내가 전담하기로 하여 병술 년 봄에 공사가 시작되고 여름이 되기 전에 정자 공사 등 모든 일이 마무리 되었다. 그해 만춘에 준공 기념식을 고향어른들과 가까운 친지들을 모시고 하게 되었다. 그 뒤 연달아 집안 친목회나 고교 동기들 모임도 그곳에서 갖기도 하고 북천초등학교 동창회 이사회 등등 친선모임을 가지면서 그해 여름방학 때는 전적으로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다음 해에는 일 년간 연구 년으로 학교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음으로 회갑기념 가족문집 출판회도 기획하고 준비하는 동인이 되었다.
그 때는 앞이 답답하다는 아내의 소망으로 앞 사랑채를 헐어버리고 그곳에다 연못과 물레방아를 설치해서 물레방아가 잘 돌아가면 아내의 생명활동도 잘 돌아가는 것으로 기대하면서 지나기도 하였다. 지금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본채 바로 앞에 연못이 있으면 흉하다 하여 메워 버리고 말았는데 결국은 사랑채만 헐어버린 꼴이 되어 지금은 엄청나게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해 여름은 외손자도 와서 연못에서 미역도 감고 자연풍광인 폭포와 잘 어울리는 정자(川松亭)에서 대밭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 맞으며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폭포에서 물놀이 하는 것을 보노라면 “이건희 회장님도 부럽지 않다”던 그 목소리가 자꾸만 귀를 스치는 듯하다.
정자에 모기장 쳐놓고 뜨거운 닭백숙이 복날에는 최고라며 권하기도 하였지만 원래 먹는 양이 적은데다가 잃어버린 입맛에 식욕촉진제도 복용하면서 체력회복을 위하여 무조건 먹어보려고 애써보지만 식욕이 제대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동생을 위하여 뭐든지 먹여 보려고 곁에서 안절부절 하던 지금도 생존해 계시지만 노후로 활동이 부자유한 처형이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식욕을 돋우기 위하여 모두 합심하여 힘쓰며 조금 먹으면 잘 했다고 박수치고 칭찬하며 조상님께 감사드리면서 정이 넘치는 그런 여름식탁을 또다시 함께 할 수가 있을까?!
발병한지 5년을 넘겼다고 주의가 다소 소홀해질 진 틈을 노렸는지 또다시 찾아온 재발이라는 운명은 인명은 재천이라며 여름을 바로 앞두고 꼭 껴안고 함께 하늘나라로 가 버렸으니...

친지들과 함께 때로는 한잔 나누던 우리 집 제주와 어머니표 동동주(어머니 밑에서 제주 담는 것을 도와 거의 맛을 전수한 분이 동네에서 상업적으로 하는 동동주)가 지금도 친구들 사이에선 회자되고 있다. 그 여름에 초청받은 스님께서도 옥수수보다는 건강을 지키는 데는 삼계탕이 제격이라고 두 그릇 해치운 그해 여름 정자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이젠 고향에서 자주 노후를 지낼 생각으로 혼자만이라도 주민등록 전입이 실행되었으니 앞으로 청문회 나설 일도 없겠지만 위장전입이란 소리 안 나오도록 산 좋고 물 좋고 주위풍광 좋은 고향별장에서 주로 기거하면서 여름철 지내기는 에어콘도 필요 없으니 특히 올 여름은 내 生에 여름인 그해 여름 생각에 젖어 북천 고향에서 자유롭게 서예와 문학에 심취해 보고 싶다.

기해년 만춘에, 최 주수 찬
(부산수필문예 35호 2019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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