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남들보다 특별하게 사랑이나 존경하는 것도 아니면서 인연을 끊어 버릴 수도 없는 여인이 3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 2사람이 어머니와 아내입니다.
어머니와 아내 두 사람 모두 투병으로 시달리면서 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 특히 나에게는 희비의 쌍곡선을 이루며 부담을 안겨준 분들이시다.
어머니께선 고령이시라 끝내 회복하지 못하시고 지금 생각하니 나에게 효도의 기회보다는 哀恨만을 남겨주시고 84년간의 생을 그대로 마감하시고 두 달 전에 왕생극락하셨고, 흔히 큰 시련을 당한 사람들이 시련을 극복하여 고비를 넘기면 인생관이 확 바뀌어 긍정적이고 밝게 되는 것처럼 다행이도 아내는 회복하여 투병생활을 아름답게 승화하여 매사에 의욕과 긍정적인 생활로 수필가로 등단하는 등 대조적인 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머닌 84년 전에 태어났으니깐 구식 분이시며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와는 달리 나에게는 애틋한 큰 추억이나 한 맺힌 사연이 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리 형제와 친인척들뿐만 아니라 친지들에게 아버지께서는 선거에 실패하였지만 교육자로서 인정 많고 매사에 베푸심과 올바르게 세상을 살아오신 훌륭한 분으로 각인되어 왔으므로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하였을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주자 10훈처럼 떠나가신 후 후회가 뒤따르는 정도의 효도도 하지 못한 아들로서 어머니의 뜻을 꺾어서라도 고향집에서 혼자 지내시기 보다는 노인요양병원에 일찍 입원시켜 드리지 못한 아쉬움으로 그저 죄송하다는 哀恨 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 편지뭉치를 정리하다가 어머니께서 서울 안사돈(막내 여동생 시어른)께 보냈던 것으로 생각되는 별 것은 아니지만 정성어린 시골 물건을 보내면서 쓴 편지(아마도 새로 고처 써 보내고 남은 것) 와 저쪽에서 받은 답장이 있었다.
어머니는 소위 옛날 여류문인들처럼 글을 창작하지는 아니하였으나 옛날 이야기책을 결혼 전 처녀시절 당신께서 여필로 (한글로 아래아를 넣어 흘림체로 쓰는 필체) 직접 필사한 책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이후에도 종종 붓글씨로 옛 문틀에 맞는 故事成語를 많이 넣어 편지를 써 보내곤 하셨는데 편지행태는 성격과는 너무 대조를 이루곤 하였다.
어머니는 富者집 외동딸처럼 커 왔으므로 철이 늦게 든 편이고 태어난 성격이 급한 편이고(나의 선천적 급한 성질도 어머닐 닮았다 고들 하며) 댕댕거린다 하여 “양철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으며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하고야 마는 성격 이였으나 옛날식 가정교육인 어른 섬기기와 음식이 있으면 갈라먹는 것만은 2등가라면 서러워 할 처지였으나 앞뒤 가리지 않고 “말은 된 대로 해야 한다”는 말을 앞세우면서 막 해버리는 말이 때론 남의 마음 헤아리지 않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성격 이였지만 그래도 파산한 富者집 宗婦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여 선천적인 “빨리빨리” 하는 성품과 음식솜씨 등은 남의 추종을 불허하였고 욕심 없이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인심들은 두고두고 오랫동안 주위사람들에게 膾炙(회자)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번에 어머님은 잘 움직이지도 못한 상태로 7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계셨음으로 그 답답하고 갑갑한 심정은 어찌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겠으리오 마는 어머니껜 죄송한 일이지만 4 ,5년 전에도 넘어져서 큰 상처는 아니지만 한번은 손 또 한 번은 발에 골절상을 입고 생각은 훤한데 몸이 안 따라주니 병상에서 짜증내시던 일을 생각하면 우리들로서는 어머니께서 “양철이” 선양 안하고 누워 지내시는 것이 때론 마음 놓이는 일이 되기도 하였답니다.
이번 고관절 골절상을 당하시기 전 거동이 불편하시니깐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신신 당부를 무시하고 새로 본 손자며느리와 손자에게 주고 싶어서 예부터 계기가 되면 잘 만드신 김자반을 만들어 주시면서 가져가 새 손부에게 부쳐주라는 말씀에 “어쩌려고 위험하게 요즈음 애들은 전혀 알아주지도 않고 잘못하면 갖다 버리고 말 그런 것 만들었나요?” 가져가곤 하면 만들어도 아무 위험 없었다고 또 이런 것 자주 만들 터이니 “그러다가 큰 일 나겠으니 가져가 부치지 않겠다”고 하여 어머니 마음을 서운하게 하였는데 그로부터 열흘 후 넘어져서 다치셨다는 연락을 받고 앰블런스 불러 고향집에 가서 모셔왔는데 싸온 짐 속에 손자에게 보내주라는 문제의 김자반이 있었다. 정이라 싶어 손주놈에게 보내주긴 하였지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되었습니다.
일전에 산청에서 전문적으로 만들어 판다는 김자반이 선물로 들어와서 아내가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반찬을 만들어 드릴 때 몇 번 기름에 튀겨드리면서 요즈음은 옛 솜씨로 김자반과 가죽자반을 만들어 파는 곳이 많으며 사는 것 보다 정이야 담겨 있겠지만 힘에 부댓끼니깐 위험천만이고 훨씬 비싸게 먹히며 아무래도 연하고 고르게 만들기가 어려우므로 손이 많이 가는 그런 전통 음식들을 만들지 못하도록 신신 당부 하였는데도 옛날 할머니들의 사고는 옛날 방식 그대로 인걸 어쩔 수 없는 모양 이였습니다.
아내는 한 치의 오차나 빈틈을 들어내지 않는 치밀한 성격임으로 음식을 만들 때도 정확히 재어서 하곤 합니다. 이러다 보니 실수가 없으므로 하나하나 떼어 놓고 따져 보면 “아내 말 들으면 손해 안 본다”는 말이 실감되지 마는 어찌 사람 사는 인생사가 수학적인 계산으로만 따질 수 있는 일인가요?
모든 일의 잣대를 자기 기준에 맞추니 나로서는 치밀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기도 싫고 한마디 해주어야 하는 성격이며 아내는 잘나가던 교사인지라 학생들처럼 시키는 대로 따라주지도 않고 술통인 고집불통의 남편이라는 작자가 늘 불만 이였겠지요!?
항상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반대 아닌 반대의 氣 싸움이 다반사 이였고 아내도 겸손형 보다는 과시형인지라 각자 자기 내세우기에 급급하였으며 여기에 나도 질세라 한층 더 심통을 부렸으니 과히 지나온 저희들의 생활이 짐작이 되리라 생각도 듭니다.
3년 전 불행히도 아내는 진행성 위암 선고를 받고 위전절제 수술 후 차라리 안락사를 택하겠다던 항암 치료와 투병을 하면서 인생관과 세계관도 많이 바뀌었고 아내의 말처럼 “위 하나를 잃으니 얻은 것도 많다” 며 우리부부 역시 역지사지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입장으로 되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칭찬하는 입장이 되니 祖上神들도 기특히 여기셨던지 하는 일이 잘 풀러가는 것 같습니다.
치료과정 중 옛부터 생활신조로 삼아 왔던 경희대 설립자이신 조영식 박사님의 모토인 “꿈 있는 자 이루고 노력하는 자 성공 한다 ”는 신조로 완쾌할 수 있다는 꿈(희망)으로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합심하여 치료에 노력해 왔으므로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앉으면 눕고 싶다고 조금 나아졌다 싶으니깐 욕심이 점점 더하여 지는 법이며 이 같은 욕심은 건강이 조금씩 회복됨에 따라 서로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강하게 작용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어머니께 대한 요구와 생각의 불일치는 어머니의 개성이 좀 특이하다 하더라도 어머니 세대는 옛 풍속인 “三從之義”에 익숙해 있으므로 본인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별 문제 없이 해결되는 것이 보통이였고 시간이 가면 아무런 앙금도 없는 것이 일반적 이였지만 아내에 대한 문제는 심리적으로 더 복잡하고 때론 진한 앙금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거나 남들이 똑똑하다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판단이 옳고 잘되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며 사실 대부분이 사리로 보면 옳은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사회 특히 가족 간의 문제는 책대로 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사정과 형편에 맞추어 독특한 심리상태가 형성되는 경우가 허다 하지만 대체로 양보와 칭찬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데 잘 알면서도 실행하기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보다 왠지 자존심 때문에 한층 어려운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머니에게 선물을 사드리면 감사의 표시가 없어도 부모에게 하는 마땅한 도리라 생각하여서인지 별 서운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일상적이나 아내에게는 그렇지 못합니다. 모지란 놈이 아내에게 加護 잡는다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가 남편에게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표시하면 더 크게 감사를 돌려드리려는 기사도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면 아내의 머플러나 스카프를 살 때 쇼핑의 즐거움을 함께 하면서 선택을 상대방에게 하도록 하여 설사 본인의 생각보다 조금 어두운 것이 선택되었다 하더라도 그 머플러와 잘 어울리는 어두운 옷과 매칭이 잘 되는 선택 이였다고 칭찬하면 칭찬 받은 감사함에 깊이 숨겨 놓았던 비자금을 꺼내서 어머니에게는 결코 하나 더 하지 않을 선물로 아내에게는 밝은 머플러를 하나 더 선물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조그마한 반응도 때론 아내와 어머니와는 다르게 작용합니다.
끝없는 수양과 덕을 쌓아 오지 않은 평범한 남자들의 대부분은 어머니와의 哀恨의 情은 생전에 어떤 일로 어머니를 다소 원망하고 섭섭하게 하여도 왜 다잡이치나며 곧잘 잊어버리며 또한 어머니의 별세 이후에도 최인호의 수필집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에서 처럼 은근하고 별 탈 없이 좋은 쪽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고 부담이 없지만 아내와의 정은 부부간 서로 상대방 몫의 비교 경쟁 때문에 잘하나 못하나 부담이 가게 되고 때론 “잘 먹고 잘 살아라” 히는 심술이 뒤따르곤 합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맹목적이고 결코 代價를 바라지 않는 사랑입니다만 부부간의 사랑은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남편에게 보다 본능적이며 예를 들면 아들이 학생일 때 과외에서 늦게 돌아오면 먹일 거라고 깎아 놓는 과일을 남편이 집어 먹노라면 기급을 하고 먹지 못하게 하고 다른 것을 먹도록 하곤 하는데 이제는 많은 면에서 효도나 사랑의 방법 또한 변하고 있으며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이상한 대접을 받게 되도록 세상은 변해 가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법도 어머니가 자식 사랑하는 반대급부를 계산하지 않는 사랑으로 바뀐다면 세상의 부부관계도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가끔 텔레비전 등에서 부부가 함께 출연하여 퀴즈 문제 등에 도전하는 프로그램 등을 흔히 봅니다. 조화로운 이상적인 가정은 문제를 서로 합심하여 잘 풀어 가는데 반하여 자기를 내세우려는 쪽은 급한 나머지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정말로 능력 있는 아내라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내조를 잘하여 집안일이나 바깥일이나 남편이 성취감을 느끼도록 합심하면서 또한 본인 자신의 일도 성취해야지 아내가 앞서서 다해버리면 남편은 할 일이 점점 없어지게 되어 무기력 해져 사회생활에서도 뒤지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보는데 “암탉이 수탉보다 울음소리가 더 크면 그 집은 불길하다”는 영국속담과 “ 암탉이 시간을 알리고 수탉이 가만히 있으면 이런 집안은 망한다” 는 A. Afshirts 어록에도 귀담아 둘 필요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내들이여! 자식들이 사랑스럽다 한들 계속해서 맹목적으로 주어야만 하니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캥거루의 사랑이라는 욕심을 버리고 이제는 어머니의 자식사랑을 남편사랑,
부모사랑(공경)으로 바꾸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면 가정이 화목해져 “너와 너희 집에 구원을 얻으리라는” 성경 말씀도 실현될 것입니다.
어머님이시여! 부디 자식들의 불효를 용서하시고 이승 일은 모두 인연 끊으시고 彌林寺의
바라춤의 인도대로 열반에 드시어서 아버지 뵈옵고 함께 왕생극락 하시옵소서!
아내여! 회춘시기를 맞이하여 부디 건강 되찾아 얼마 안 남은 인생 서로 양보와 봉사하면서 사랑이 넘치는 살만한 세상을 같이 만들어 보지 않으시겠소. 평범한 자식과 남편의 <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禮讚賦라고 생각해 주시구려!
2005년 한껏 치장한 여인 같은 춘분을 맞이하여
연구실에서 최 주 수 讚
PS ; 이 글은 2005년도 진주고등학교 부산동창회지인 “晉高人”에 게재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첫忌日(2007년 12월 27일)을 지내며 참석한 가족들이 딸이 제작한 장례식과 49재의 동영상을 함께 보면서 찹찹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하시고 아내가 건강할 때 사랑하시길 바라는 마음에 인터넷에 공개합니다. 부디 양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어느 아들에게도 어머니는 그녀만의 특별한 향기를 지닌 존재일 것입니다.
장모님이 암으로 투병을 할 때도 그랬고, 또 할머니께서 연로함때문에 이런 저런 병을 앓으실때도 장인어른이 할머니와 장모님을 위해서 어떻게 사셨고 또 어떻게 병수발을 하셨는지 곁에서 지켜보며 잘 아는지라 더더욱 장인어른이 존경스러울뿐입니다.
원대로, 그리고 고금의 고사성어처럼만 이루어진다면 정말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아직 살아야할 인생이 구만리같은 제가 감히 건방지게 생각해보면 다만 우리네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만족이 항상 조금씩 부족할 뿐이고, 그 부족함이 채워지면 또 그만큼의 욕심이 생기기 때문에 언제나 작은 불협화음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만족하지만 욕심을 좀 더 부리자면 저는 그저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서로가 서로에게 좀 더 의지하고 버팀이 되가며 북천의 집처럼 오래될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그런 모습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두 분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요! 2006/01/02-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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