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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차례와 아내의 기제사 2016/02/09
최주수 님의 글입니다.

   설날차례와 아내의 기제사

오늘이 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하루 설날이다.
설날 차례로 모인 집안 친척들 모두 돌아가고 아들 녀석도 병원일로 바쁘다면서 서둘러 귀경하였다.
참! 그 옛날 40여 년 전 아내와 신혼시 고향집에 제사 모시러 다닐 때의 어려운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70년대 초중반까지는 이중과세를 막는다고 공공연히 구정을 억제하기도 하였고 경조일이라고 단 하루만 공휴일이 된 뒤에도 자가용은 꿈도 못 꾸던 그 시절 교사로선 귀향한다는 것이 교통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점이 따랐으며 기차도 운행편수 문제 등으로 화물차칸  같은 편이 임시 증편되던 시대였으니...

특히 우리 집처럼 옛 전통과 고풍을 따르던 파산한 소종가의 장손이었으니  그 당시 교사로서 서투른 전통고풍을 격어야만 했던 아내의 어려움은 지금 생각해 보니 짐작의 범위를 훨씬 넘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고향본가는 화장실과 안채가 멀리 떨어져 있고 대밭 쪽에 있었으니...  저녁에는 요강을 상용하던 그 시절 화장실 가기 무서워 명절 때 가면 먹고 마시는 것도 절제한다는 아내를 두고 밖에 나가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기만 하였으니 지금 세상에 생각하면 뭐라고 변명의 넋두리도 내놓기 어려울 지경이다.

아내가 승천한 후 그럭저럭 6년간 아내의 기제사를 우리 집에서 아들과 같이 모셔왔는데 시대의 변천과 아들의 사회활동 상 제사 때마다 귀향도 어렵고 또한 재혼한 내처지도 격에 맞지 않고 우리 윗대의 제사에도 그런 선례가 있기도 하여 작년부터 논의되어 온대로 곧 다가오는 올해 기제사부터는 서울 아들집에서 모시기로 하였다. 물론 아직은 명절제사와 아버지를 비롯한 조상님들의 기제사는 내가 제주임으로 부산 집에서 모시기로 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미안감이 앞서는 심정이다.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께서 손수 필사본으로 저술하신 집안 조상의 간략한 흐름과 우리 집만의 특색 있는 제사 모시는 방법을 상세히 남겨주신 책 “忌案”과 종중의 “家禮”를 참조삼아 告由祭의 고유제문을 쓸려고 하니 한문학식도 부족하고 또한 아들세대는 정보화에 따른 한글화 시대임으로 고유문도 한글로 다음과 같이 하여 조상님 차례후에 아들로 하여금 고유제를 모시도록 하였다.

“삼가 어머님 전에 고하나이다!.
사랑하고 존경하던 어머님께서 승천을 하신지도 어연 6년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항상 저희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이시고 집안을 위하여 헌신해 오신 어머님에 대한 연민의 정은 세월이 갈수록 깊어만 갑니다.
저희가 불민하여 어머님에 대한 사랑도 돌려드리지 못하고 효도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살이에 쫓겨 살면서 세태변화에 순응하다보니 어머니기제사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불비례하였음을 용서 바라옵니다.
이젠 시대에 따라 풍습도 변하고 있으며 마침 집안 어른들과 아버지께옵서도 어머니기제사만이라도 저희가 정성껏 모심으로서 자식으로서 효도의 도리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니 앞으로 정성을 다하여 저의 집에서 어머니기제사를 모시고자 하오니 많이 흠향하시옵소서.  
앞으로도 저희들은 물론 형제자매들과 집안친척들 모두들 화평하게 잘 지내도록 더욱더 보살펴 주시고 어머님께서도 극락장생하시길 엎드려 빌며 고하나이다.
     “2016년  정월 경신 설날에, 불효자 최 선 종 재배”

  어쩐지 아들의 고유가 끝난 후 나도 술 한 잔 올리니 생전에도 나의 과음 탓에 어머님 특기인 고향에서 잘 빚어온 우리 친구 모두들 홀딱 빠지기도 하였던 “엄마표  동동주청주” 祭酒까지도 차라보기 싫다고 한 적이 있는 아내의 그 말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제 흘러가는 시대변천과 관습의 변화에 따라 아내제사에는 내가 서울 아들집으로  물론 역귀경 해야 하게 되었는데...
얼마 안 있어 늙어지고 힘 빠지면 명절제사 뿐만 아니라 내 부모님을 비롯해 조상님들 기제사도 역귀경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니 개축해둔 고향의 생가는 비어 자꾸만 쇠락해 가며 나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생각할수록 조상님들께 죄스러움만 가득 차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승천한 아내의 헌신과 올바른 판단으로 지금 여기까지 집안이 다시 도약의 활주로를 깔았는데 아내의 노력을 헛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라도 도약의 비행을 시도하여 집안의 위상을 크게 높이고 국가에 도움 되는 아들 손자들의 활동과 집안의 부흥을 기대해 본다.
또한 문제가 있었던 6대조 귀암동 난사 할아버지 산소 관리문제도 조상님보살핌? 으로 해결되고 하니 형제자매를 비롯한 일가친척 간 유대강화와 건강을 유지하면서 할아버지의 유훈인 종중과 조상의 산소 관리에 더 힘써야 하겠다고 다짐해본다.
혈액순환에 더 유념하여 본인의 평생 주치의사인 김 교수님의 칭찬과 기대에 부응하도록 혈행이 팍팍 통하도록 잘 관리하며 우리 집도 다시금 옛날처럼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춘 지방명문으로서의 재도약을 위하여 더 일층 각오를 다져야겠다고 또 몇 시간 지나면 설날 초하루가 지나가고 말겠지만 정초부터 또다시 다짐도 해본다.

승천한 아내에게 생전에 약속하여 서예전 수상을 실행한 것처럼 이번에도 자아실현의 한 방편으로 지금까지 조금씩 노력해온 일들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이루어내고 인생의 정리기록이랄 수도 있는 고희기념집 출판으로 새 아내와 더불어 보잘 것 없지만 사심 없는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진실하게 밝혀 하늘나라에 계신 조상님과 승천한 아내에게 부끄럼 없으며 또한 내 자손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정초부터 마음을 단단히 하고 싶다. 흘러가는 세월은 붙잡을 수 없으니 자연의 이법에 순응하면서 좋은 풍습은 계승해나가면서 모두들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2016년 경신일  설날에,  최 주 수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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