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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2010/11/18
최주수 님의 글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다”는 옛말이 있지만  지금말로 바꾸면 “총알처럼 보다도 미사일처럼  날아서간다” 가 더 실감 있게 느낄지 모르겠다.
평소 아내와 친밀하게 지내든 사람과 가까운 친지들의 참여로 북천 고향에 있는 북암사에서 아내의 49재를(6월6일) 치루고 먼 길에 오신 분들을 위하여 그냥 바로 돌아가도록 하기 보다는 그래도 옛날 같으면 탈상에 해당하는데 고향본가에 잠시 들러 다과나 한잔 들면서 마지막으로 아내와의 인연과 추억을 한번 반추해 보기도 하였다.
오늘 여식의 추도사처럼 모두들 작은 체구의 거인이라며  아내의 활동적인 모습과 만약 생전에 다른 일로 이 정도의 사람이 모였다면 즐겁게 분위기 메이커로서 역할을 하였을 일들을 떠올리기도 하였지만 아직도 나의 귀를 울리는 그 소리는 서울대 병실에서 아내의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하는 소리다.

3월 중 아내의 3 번째의 항암치료 후 힘들게 아들 병원(시너지 정형외과 병원)에서 아들 녀석의 마지막 혼신을 다한 척추땜질시술(vertebroplasty)에도 통증은 가시지 아니 하였고 4차 항암치료를 위하여 병실 때문에 예정보다 하루 일찍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3일간(3월20~22)의 4차의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회복이 뒤따르지 못하여 퇴원 후 다음 5차 치료를 위하여 회복때까지 부산 자택에 외출도 할겸 이웃에 있는 부산 대동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있던 중 또 다시 악성폐렴이 발생하여 담당 방 교수의 해외출장으로 내과 박 교수로 선택교수를 변경하여 정성을 쏟는 폐렴치료도 별 차도도 없었다.

28일 방 교수님이 돌아와 다시 방 교수 특진으로도 폐렴이 잡히지 않고 아들 병원에서는 죽은 억지로라도 조금씩 먹었으나 그렇잖아도 없는 식욕이 이때부터는 밥은 물론이고 과일도 별 들지 못하는 사정이 되어 아들 녀석은 억지로 먹이면 오히려 스트레스로 이로울 것이 없다고 하였지만 7 년 전 위암수술 후에도 같은 사정에서 억지로라도 먹인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위협 반 사정 반으로 “먹지 않으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 당신이 안 먹으면 나도 먹을 수 없다”고 앙탈을 부리니 통증을 무릅쓰고 지내면서도 자기도 살아보겠다고 먹으려고 노력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하는 말들이 지금도 귓가를 뱅뱅 돌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 당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회복하여 살아남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된다며 당신은 투지가 강하니깐 꼭 해낼 수 있으며 우리가족 모두 힘을 합쳐 이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지 못하고 더 격려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문득문득 한이 맺힌다.

통증을 잡기위해 진통제를 좀 과도하게 사용하면 산소포화지수도 떨어지고 환자도 깔아지고 하는데다가 전번에 혼이 난 것처럼 이번에도 호흡지수도 떨어지고 혈압도 떨어져 당직의사와 간호사에게도 비상이 떨어져 혈압상승제와 생리식염수 등을 주어도 기대에 못 미쳐 산소호흡기를 갖다 대어서 겨우 90에 가까운 산소포화도를 유지하였으나 자꾸만 떨어지는 산소포화도와 호흡지수 때문에 방 교수도 안타가워 하면서 몇 번 왔다가곤 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중환자실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면서(31일) 호흡이 돌아와서 올라오든지 그렇잖으면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서 내 뜻을 묻길래 의사인 아들과 상의하니 다른 방도가 없으니 희망을 가지고 중환자실로 갔다가 호흡을 정상으로 하여 이삼일 만에 어떻게든 올라오자고 하여 입원병실을 그대로 잡아두고 밤 8시경에 내과 중환자실은 병실이 없어 급히 외과중환자실 31번 시트에 자리 잡게 되었다.

외과중환자실에 내려가서 아내의 “집에 가자, 부산 집에 가자”는 애원에 가까운 소리가 지금도 잊어지지 않으며 한 시간 후 9시경에 중환자실을 나와서 병실에 올라와서 대충의 입원용품과 가방 등은 아들 차에 실어 보내고 잠 못 들어 뒤적이고 있으니 새벽 3시경에 핸드폰소리가 울러왔다. 중환자실 간호사라며 좀 전에도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잘 안 되더라며 환자가 불안하다며 보호자를 찾는다고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한다.  아마 아내가 간호사에게 통사정을 한 모양이다.

급히 내려가 보니 환자가 보호자가 없어 불안하다니 간호사가 규정에 어긋나지만  첫날인 오늘밤은 특혜를 주겠다나? 그 때부터 날이 샐 때(7시)까지 이야길 주고받았는데 호흡이 떨어지니 아내는 이야기도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많은 이야길 주고받지도 못했는데 그것이 아내와의 마지막 나눈 이야기가 될 줄이야?!
주로 아내가 나에게“고마워요, 고마웠어요” 하길래 나는 “그런 말 하지 마오! 오히려 내가 당신에게 고마워해야지, 당신 정말 살아오면서 수고 많았어요” 하고 애길 주고 받다보니 무슨 마지막 작별 이야기 같아서 더 이야기도 계속할 수도 없어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곧 호흡 안정되어 3~4 일내 병실로 올라가야지, 병실 빼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수간호사에게 부탁해서 그대로 두기로 했어” 이런 가벼운 말들만 했는데 그날은 산소호흡기만 끼웠고 해서 힘들더라도 이야길 나눌 수 있었는데 아내가 뭔가를 얘길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당신은 워낙 투지가 강하니 틀림없이 이겨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확실한 자신감을 더 심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되기도 하였다.
또 그 와중에서도  비싼 병원비 때문에 걱정하는 것 같아 “당신 걱정하지 마!, 언젠가 당신 깜짝 놀라게 하려고 당신 몰래 비자금 많이 모우고 있어” 해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사위의 증권회사에 퇴직 후를 위한 비자금을 좀 모우면서 사위에게 비밀을 지켜야 된다고 몇 번 부탁하였는데 입이 무겁고 신중한 사위는 정말로 우리주변에는 전혀 언질도 준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아침 8시가 되어 간호사가 교대해야 된다기에 난 병실로 올라가 10시 면회시간에(정해진 면회시간이 오전 10시와 오후 7시 각 30분씩)면회를 마치고 나오자 곧바로 중환자실 의사가 찾는다하여 만났더니 호흡이 불안정하여 인공호흡(기도삽입)을 시켜야겠단다.   아들에게 연락해 봐도 연락도 안 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주치의는 시간 끌다가는 자칫 응급으로 처리해야 할지 모르니 빨리 기도삽입을 하자고 하길래 그렇게 하도록 허락을 했었는데, 그 이후론 아내는 들을 수는 있어도 말할 수는 없게 되었으니......그러다가 이틀 만에 내과 중환자실에 22번 시트가 비워 옮기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우리가 하는 말은 알아듣지만 자기의 의사표현도 못하여 서로 감정의 소통도 없이(눈을 깜박이면서 간단한 표시는 하지만)정말 쓸쓸하게 통증에 시달리는 3주간의 생활을 하다가 병실로 올라가는 우리의 염원을 들어주지 못하고 한스런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기도삽입을 하기 전에 주치의에게 부탁하여 아내와 조금이라도 말을 나누어 투병의 용기와 의지를 더욱더 불태우게 하지 못한 것이 영원히 가슴에 회한이 되며 마음은 있으나 못난 경상도사나이의 투박한 성질 때문에 한평생 아내를 포근하게 해주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면서 당신 말대로 “그래도 당신에겐 내가, 나에겐 당신이 제일이라는” 이 말의 의미를 이제는 실감할 수 있으며 당신의 영혼도 49일간의 이승에서의 방황을 마치고 영원한 안식처인 더 좋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이끌 수 있으면 우릴 이끌어 주시게나!

엊그제 이틀간은 빨리 제몫 챙기려 서두르는 자식들의 일반 행태를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있어서 잠을 설치다가 오늘 법무사무소에 갔다가 미비 된 서류를 보완했는데  상속법대로 하지 않고 당신의 유언대로 하다가 후일 내 사후의 유산상속은 모두들 기분 좋게 될지 지금부터 걱정도 되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성질이 급하지만 당신의 그 대쪽 같은 성격도 또한 아들에게 서운함을 많이 표하던 융통성의 부족도 실은 아들에게 과한 욕심을 바라는 당신의 문제점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면서 이제는 병실에서 많이 듣든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집에가자”는 말들도 귓가를 떠나고 당신도 좋은 세상에서 이젠 잘 지내고 당신의 백일제에는 마음 편하게 당신을 생각하고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오.

서운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 주위 사람들의 권고대로 당신을 가슴속에만 새기고 훌훌 털고 일어나서 씩씩한 모습 보이면서 당신의 희망대로 당신 없어도 꿋꿋이 잘사는 모습 보일께, 정말 그렇게 될지 열심히 노력해 봐야 되겄지만 굳게 한 다짐에도 불구하고 또 눈에 눈물이 맺히려 하네! 이젠 한 동안 당신과 주고받는 말이나 생각이 뜸 할 터이니 당신이 양해해  주시구려!  
  
      49재를 마치고 당신을 잊어버리려고  당신을 원망하면서(6월 11일), 남(의)편이

문득 문득 생각나는 장모님의 모습..
살아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에는 더 많이 듭니다.
뭐 그리 좋은 곳이기에 그리 서둘러 가셨는지 후세에 만나뵙게 되면 꼭 한번 따져 물어봐야겠습니다.
장인어른, 많이 허전하고 외로우실테지만 힘 많이 내시고 굳건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잘 지내셔야 합니다.
요즘 살도 좀 빠지시고, 힘도 없는 것 같아 안쓰럽습니다.
조금 귀찮으시더라도 찬 꺼내서 따뜻한 식사를 끼니마다 꼭 하시고 취미 생활도 하시면서 조금더 즐겁게 지내시려고 노력하시길 감히 부탁 드립니다.
우리 가족 모두 화이팅입니다...!!!

2010/11/19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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