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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 농학과 65학번 졸업 40주년 모임 2010/08/09
최주수 님의 글입니다.

      농학과 65학번 졸업 40주년 모임                        
                        최 주수(농학과 65학번, 동의대학교 교수, 수필가)

  수년 전부터 농학과 대학입학 동기들이 정기적으로 부부동반 하여 우정도 쌓고 인생 후기 “3모작 인생”이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면서 모임을 이루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40년이 되었으니 생활철학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그간 인생의 묘미를 알만도 하건만 뭔가 바쁜지 쫓기듯 달려와서 그런지 값있는 생의 감격이 부족하다.
  1960년대 중반이전 우리나라는 다양한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70%의 국민이 농민이었으며 농업중심의 그것도 쌀•보리 위주의 집약적 소규모 영농이 대처를 이루고 있었고 교육하면 그 당시 농업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든 때였고 개교 이후로 65학번 경상대 농학과(구 진주농과대학) 이십오 명 입학생의 경쟁률과 입학자원이 최고로 우수한 해였다고 하였지만 그 후 군사혁명이후 혁명정부에서는 국가발전의 동력을 초고도성장의 중공업에 몽탕 쏟아 부었으니 상대적으로 이후 농업계의 희생으로 특히 공업입국의 기치가 펄럭일 때였으므로 졸업 후 농업계로의 진출이 다소 움츠려 들 때로 농업계 특히 지방대학으로 진로 설정한 것을 때론 후회한다며 이 전공분야 보다는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종합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경상대 위상과 업적이 전국을 뛰어 넘어 글로벌 수준이라 모교의 졸업생으로 또한 대다수 동기들이 재학시 학생회나 동아리 임원으로 활동한 바 있고 특히 난 경상대 1호 박사로서 자부심을 더욱더 가지게 되었지만......
그 당시는 대졸자의 수가 많지 아니 하였으므로 모두들 40 년이 지난 지금은 기대대로 진출분야에서 탑 존(top zone)의 업적을 이룬 것으로 판단되나( 박사 8명, 교장 4, 대기업 임원 1, 고급공무원 4, 중소기업가 3,  농협간부 2, CEO 1, 자영 등) 정년의 문턱에서 뒤돌아보니 모두들 나름대로의 고투와 적응에의 어려움도 있었으리라 사료된다.

2000년에 잘나가던 친구가 암투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때 만난 기회로 시작된 부정기적 만남이 당시 LG화학 임원이던 박종근 전회장의 주선과 노력으로 정례화 되면서 그 후 경상대학교 발전기금도 기부하게 되었고 동참자의 증가로 서로의 우의를 다져가고 있다.  
입학 40주년(2005)에는 진주 칠암동 소재 한식점<석봉>에서 은사님을 모시고 추수지도로 한 번 더 노은사님의 인생철학과 우리들의 정년을 대비한 값진 인생설계에 대한 말씀과 특히 강회 은사님의 “자아실현”과 “삼모작 인생” 등을 지도받는 기회도 가질 수가 있었다.
그 후 매년 정기적 모임으로 동부인 하자는데 의기투합하여 지금 6회에 이르고 있으며 정례적인 이번 모임(11월 14-15)은 울산 진하해수욕장 바닷가 소나무 숲에 쌓여있는 S K 연수원에서 8명의 회원이 전원 동부인하여 참석할 수 있었는데 이번 모임도 운 좋게도 LG 임원 퇴임 후에도 재직시의 고향발전에 기여한 점들이 인정되어 올해까지 울산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으로 재직한 박종근 회우의 공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1개월 여 전부터 아내의 척추 디스크 쪽에 약간의 압력을 받게 되어 고통도 조금 있고 식욕을 더 잃게 되어 체중이 감소하여 노심초사했지만 신경안정을 위한 침술처방이 조금은 효과를 보게 되어 다소 상태도 호전되어 가고 집에만 있으면 답답함을 느끼게 되고 특히 모임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조용히 못 있는 성격이라 힘에 부치면서도 유우머 감각 등으로 분위기를 잘 조성하는 소질이 있는 아내가 다행히도 이삼일 전부터는 식욕도 다소 회복되고 상태도 좋아져 대학 입학동기 모임에 참석할 수 있겠다 싶었다.
토요일 오후 5시에 연수원에서 모이기로 되어있어 부산친구들과는 사전에 연락해 가면서 그곳에서 정시에 만나기로 하였으나 출발하려고 현관 입구 주차장에 하루 안타고 놓아둔 자동차 시동을 걸어보니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당황해서 카 센터에 연락해 보니 때로는 하루 이틀 차를 방치해두면 그런 경우도 있단다. 긴급서비스에 연락하면서 이리저리 재시도를 해보니 시동이 걸린다. 그 때문에 생각보다 20여분 출발이 늦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해 보니 5커플 정도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을 나누며 6시에 어느 어부가 직접 경영한다는 예약된 자연산 횟집에서 소맥 칵테일로 김영현(농협 본부장 출신) 회장의 건배제의로 건배를 마치고는 역시 자연산은 쫄깃쫄깃 뭔가 다르다고 하면서 오랜만에 한잔 술로 회포를 풀었다.
나중에 들었던 얘기지만 아내는 근래에 맛있게 많이 먹었다나! 뒷날 힘도 나고 묵은 스트레스도 확 풀리더라나?!(위무한 사람이 먹어 봐야 얼마 먹겠느냐! 마는 역시 기분이라고... 배가 불러 그 맛있는 물메기탕도 못 먹었다는데).
여자분 들은 조금은 피곤하다며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야기나 하겠다고 하니 요즘 세상은 여성상위가 아니라 마님천국이라 마님허락이 떨어져야 한다며 오랜만에 남자들은 해방되어 40여 년 전 봄가을소풍 때나 남강변 백사장에서 발야구 후 부속농장 과수원길(영춘로)에서  축오징어에 막걸리통술 먹던 생각하면서 노래방에서 그 시절 어렵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였는데 별생각 없이 모인 것이지만 그러고 보니 과반수이상이 졸업 40주년(졸업년도는 차이가 있음)이라 늦었지만 뭔가 옛추억에 흠뻑 빠져보기로 하였겠다.
남인수, 이봉조와 같은 도동 출신이라 재학시절부터 제2의 남인수라는 별칭을 가졌던 김영현 회장이 아직도 죽지 않은 실력으로 한 곡조 빼고는 모두들 나름대로 추억에 파묻혀 한 곡조들 하지만 인생을 살아온 중년의 때가 묻음음직 한데 여기 참여한 친구 모두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구축한 탓일까 초로의 깨끗함이 풍겨진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술도 좀 과하게 마신데다가( 개척제 농주대회에서 탁주 한 말 마셨다고 탁서방 이라 불러졌는데)난 요즈음 허리통 치료도 받고 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3학년 때 지리산에 곤충학 실습가서 상봉에서 교수님이랑 그림책 공부하던 추억 떠올리면서 새벽까지 그림공부에 몰두하였는데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면 부처님도 감응하여 도 닦는다는데 그날밤 성불한 박전회장이 모두 보시하였다나?!
아침식사는 미역국으로 해장을 하면서 헤어지기가 너무 섭섭하다며 점심을 먹고 헤어지자는 말도 나왔으나 다음을 기약하자며 헤어지기로 하였는데 조정래 학장은 이번에 정년퇴임 후 첫 만남을 위하여 바쁜 일 팽개치고 부라부라 오다보니 어제 밤  늦게 도착하여 겨우 아침 같이하고 헤어짐이라니 뭔가 아쉽고 서운하다. 서운함을 달래러 다음해부터는 봄, 가을 두 번 만나기로 하고 내년 봄을 기대하기로 하였다.

이번 모임부터는 년회비 없이 적립된 회비를 없어질 때까지 우선 써버리기로 하였는데 집안에 좋은 일 있다며 저녁식사는 홍광기(자영업)회우가, 노래방은 강정호(철쭉농장대표)회우, 울산에 까지 왔는데 “똥개도 제 동네에선 목에 힘준다는데 내 고향 울산 방문을 환영한다며” 울산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겠는데 어쩔 수 없다며 아침은 박종근 전회장이 몽땅 지불하는 바람에 회비가 조금도 축날 틈이 정말 없어요!
  진주에 도착하자마자 즐거웠다고 전화해주는 조정래 학장의 매너에 감탄하며 그냥 있지 못하고 참여한 여자분 들께 메시지를 보내며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며 이번 나들이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 것을 느끼며  뭐니뭐니해도 마니(돈)가 최고 아니고 건강이 최고이니 건강하게 살면서 다음에 또 만나도록 합시다. 특히 그동안 내조 한다고 수고 많으시고 요즈음은 며느리, 사위, 자식들 위해 밑반찬 해서 당일택배 보내는 둥 아프터 서비스로 또 수고하시는 사모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남편건강 좀 더 챙겨주십시오! 그래야만 내년 봄 우리 모두 다시 만날 날을 지금부터 기다릴 수 있잖아요! 별생각 없이 만난 졸업 40 주년 모임도 잘 마무리 되었지만, 사정상 이번에 참여하지 못한 친구 분들 내년 봄엔 꼭 만납시다, 이젠 자랑스러운 모교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모두들 안녕!
                   2009년 11월 17일  연구실에서 최 주 수 찬

최주수 이 글은 경상대 동창회보에 투고한 후 반년후(동문회보 54호: 2010.7)에 게재된 것으로 이 글을 보지 못하고 아내는 하늘 나라로 가 버렸음

2010/08/09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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